얼마 전 출장 중 일본 도쿄의 호텔에서 TV를 켰다. 우연히도 중국판 CNN이라는 펑황(鳳凰)TV의 전문가 좌담회가 나왔다. 중국 전문가들이 남중국해 문제에 관해 토론을 벌였다. 무심히 듣다가 귀가 멍해질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남중국해는 중국의 전략적 핵심 이익이라는 말이었다. 또 중국은 과거 소국의 우려를 배려해서 공동개발을 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더는 소국 때문에 자신의 이익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왜 동남아 소국은 미국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하고 유독 중국이 하는 일에 우려하느냐는 주장도 있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남중국해는 핵심적 이익이지만 서해와 동중국해는 거의 ‘내해(內海)’ 수준이라는 내용이었다. 100년 전 핵심적 이익과 이익선을 운운하던 제국일본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에 웬 19세기적 ‘힘의 논리’가 중국에서 대두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중국의 현명한 지도자들은 하얀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것이 최고라는 매우 실용적 생각과 함께 중국이 일어나더라도 평화롭게 해야 한다는 판단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는 민족주의적 사고와 행동이 넘치고 있다.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우리에게도 중국 편이냐 미국 편이냐를 확실히 하도록 요구한다.
요즘 제일 잘나간다는 스마트폰 아이폰은 ‘메이드 인 차이나’다. 물론 애플사가 미국 회사니까 미중 합작품이다. 더 정확히는 핵심부품인 디스플레이와 반도체를 한국산으로 쓰기에 한미중의 합작품이다. 중국의 경제적 성공 배후에는 세계화가 자리 잡고 있다. 세계화의 최대 수혜자인 중국이 편가르기를 하는 상황은 너무 아이로니컬하다. 지구촌이 하나로 점점 평평해지는 상황에서 한중관계와 한미관계가 제로섬이 아니라는 점을 중국은 이해해야 한다.
사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한중의 이해는 다르지 않다. 천안함 공격 이후 내가 만난 중국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반도에서의 이익을 네 가지로 요약한다. 한반도 안정, 비핵화, 북한의 개혁·개방을 말하면서 무엇보다도 전쟁 방지를 가장 우선적인 이익으로 지적한다. 사실 천안함 공격도 우리 영해에 들어온 해군함정을 공격한 엄연한 전쟁 행위였다. 이 점을 중국도 우려했고 나름대로 후진타오 주석이 김정일 위원장을 두 번이나 만나며 전쟁 방지를 위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한군의 무차별 연평도 포격 직후 남북 공히 냉정과 절제를 요구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놓쳐서는 안 되는 정말 예의주시해야 할 점이 있다. 한국 국민의 여론 동향이다. 천안함 사건을 겪은 한국 국민은 북한군의 무차별 포격에 분노하면서 ‘확전 방지’라는 용어에도 들끓고 있다.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되 전면전은 피해야 한다는 지극히 합리적인 정책에 대해 한국 국민은 불만을 이야기하고 결국 국방부 장관이 경질되고 교전수칙이 수정되는 사태가 초래됐다. 북한이 또다시 도발한다면 이제 한국의 선택은 중국이 원하는 냉정과 절제를 훨씬 넘는 선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도발에는 강력한 응징이 뒤따를 것이다. 역사는 왕왕 우발적인 사건이 전쟁으로 비화되는 상황을 말해 왔다.
한반도의 전쟁 방지라는 중국의 중대한 이익이 북한군의 무모한 연평도 포격으로 위협받고 있다. ‘총구’라는 원초적 폭력 위에 성립한 정권에서 27세짜리 후계자가 군을 조기 장악하기 위해 ‘포격의 달인’이라는 칭호를 만드는 상황에서 북한군의 도발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북한을 껴안는 일 이상으로 더는 도발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막는 일이다. 중국 지도부는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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