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천시와 일부 정치인이 북한의 포격 도발로 폐허가 된 연평도 마을을 둘러보는 자리에서 “연평도 포격 현장을 ‘평화마을’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격 현장을 원형대로 보존해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하면 평화의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연평도에 남아 몇 차례 마을을 둘러본 취재기자에게는 평화마을 구상이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커멓게 불탄 가옥이 여러 채 늘어선 연평중앙로 167번 길은 한 낮에도 지나가기가 꺼려질 정도로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건물에 겨우 걸쳐 있는 슬레이트와 양철 지붕에서는 쇳소리가 들렸다. 반파된 가옥의 옹벽은 금세 무너질 것처럼 위태롭게 서 있었다.
평화마을 구상을 들은 주민들은 대부분 미간부터 찌푸렸다. 한 주민은 기자에게 “당신 집 앞에 불타고 무너진 폐가 한 채가 평생 서 있다고 생각해 보라”며 “나는 절대로 그런 곳에 살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주민은 “지금은 포격으로 무너진 잔해를 치워도 주민들이 들어올까 말까 하는 상황”이라며 “(현장 보존 얘기는) 정치인들이 이곳에 살지 않으니까 할 수 있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지금 연평도 주민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인천으로 간 피란민들은 임시주거지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보름 가까이 찜질방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살갑게 지내던 이웃 주민들이 보상 문제를 놓고 언쟁을 벌인 뒤 서먹한 사이가 되고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린다. 연평도에 남은 주민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가게 문을 연 곳이 한 군데도 없어 돈이 있어도 생필품을 살 수 없다. 유리창을 교체하는 간단한 복구 작업마저 늦어져 주민들은 겨울바다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6일 연평도는 한낮인데도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졌다. 바닷바람으로 체감온도는 영하 6, 7도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북한의 포탄이 떨어진 연평도는 마을 밖 사람들에게는 남북 대치 상황을 보여주는 ‘역사 현장’일지 모르지만 이곳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는 ‘삶의 현장’일 뿐이다. 후세의 안보교육을 위해 포격 현장을 보존하고 평화공원 설립을 추진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수 있지만 정부와 정치인들이 먼저 챙겨야 할 것은 북측의 도발 이후 생존권 위기에 놓인 연평도 주민들의 ‘생계’다. 정부는 이날 연평도 포격 도발 후속대책을 발표했지만 연평도 주민들은 “새로운 내용이 없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주민들이 납득할 만한 보상대책을 마련한 다음 평화마을 조성 계획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 .―연평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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