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관리공사는 2008년 말∼2009년 초 두 차례에 걸쳐 저축은행들의 부실채권 1조7000억 원어치를 사들였다. 정부는 세금으로 저축은행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자구책(自救策)을 주문했지만 말뿐이었다. 고수익을 노리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늘린 저축은행들은 다시 부실에 빠져 올해 6월 2조8000억 원의 자금을 더 수혈받았다. 금융당국은 구조조정을 통해 부실을 없앴다고 했지만 저축은행의 건전성에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금융위원회는 저축은행의 부동산 PF 부실채권 매입에 대비하기 위해 내년 예산에 3조5000억 원의 구조조정기금을 반영해야 한다고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비공개로 밝혔다. 부동산 경기침체가 계속되면 저축은행 5곳의 자기자본비율이 5% 미만으로 떨어져 부실 위험에 빠질 수 있으므로 다시 세금 투입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세금을 이처럼 가볍게 여겨도 되는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국민이 무슨 봉인가.
저축은행의 위기가 반복되고 갈수록 커지는 데는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의 책임이 크다. 저축은행들은 건설사의 PF에 경쟁적으로 뛰어들었다가 부동산 경기가 냉각되면서 부실화했다. 한탕주의 경영의 필연적 결과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경영진의 책임을 철저히 묻기는커녕 손쉬운 방법을 택했다. 국민 세금을 투입하고, 대형 저축은행에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시켜 물 타기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대형 저축은행마저 부실을 피하지 못해 ‘부실의 대형화’만 불렀다.
저축은행에 대한 관리감독만 제대로 이뤄졌더라도 부실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저축은행은 이름만 은행일 뿐, 대부업체에서 발전한 상호신용금고가 모체다. 은행에 비해 턱없이 규모가 작고 영업 방식과 리스크 관리도 허술하다. 일부 대주주가 저축은행을 사금고로 여기고 대출 커미션을 챙기는 사례도 적지 않다. 금융 경영인의 자질과 윤리의식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퇴직한 직원들을 저축은행 감사로 보내기에 바빴으니 감독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금융당국은 저축은행 부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부동산 경기 침체를 탓한다. 하지만 더 큰 책임은 저축은행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부추긴 금감원에 있다. 금감원에 책임을 묻지 않고서는 저축은행 부실의 악순환을 막을 수 없다는 개탄이 금융권에서 나온다. 금융당국은 불과 몇 달 전까지 대부분의 저축은행에 문제가 없다고 큰소리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