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강경식 회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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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14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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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때 경제 총수였던 강경식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이 회고록 ‘국가가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김영사 간행)을 펴냈다. 1961년 재무부 사무관으로 시작해 30여 년을 공직에서 보낸 그는 이 책에서 “정부 관리는 늘 ‘왜 정부에서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장에서 결정할 일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의미다. 그는 ‘가장 후회스러웠던 일’로 1997년 심각한 자금난에 빠진 기아자동차를 곧바로 부도 처리하지 못했던 점을 꼽았다.

▷이 책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역시 외환위기 때의 상황이다. 그가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게 보고해 국제통화기금(IMF)에 지원을 요청하기로 최종 결정한 게 1997년 11월 14일이었다. 이틀 뒤인 16일에는 강 전 부총리가 장미셸 캉드쉬 IMF 총재를 만나 IMF에 300억 달러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고 정식 발표는 19일로 잡았다. 그러나 그는 19일 오전 경질됐다. 후임 임창열 전 부총리는 IMF행(行)을 번복했다가 자체 외화 조달에 실패하자 21일 IMF에 손을 내밀었다.

▷강 전 부총리는 “약속 번복으로 IMF와 미국의 신뢰를 잃은 탓에 우리가 가혹한 IMF 구제금융 조건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김인호 당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도 ‘환란 주범은 누구인가’라는 신문 기고에서 “IMF와의 합의를 깨지 않고 구조조정 의지를 밝혔다면 긴축정책은 협상을 통해 거부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썼다. 아쉬운 대목이다.

▷강 전 부총리는 자신과 김 전 수석이 김대중 정부 때 ‘환란 주범’으로 재판을 받은 것에 대해 ‘마녀사냥’이라고 비판했다. 환란은 개혁 방해 세력과 정부 정치인 경영인에게 공동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대법원은 2004년 ‘관료의 정책 판단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며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설사 정책 판단과 집행의 과오가 있더라도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라는 법리(法理)다. 외환위기 재판은 있었지만 백서는 아직껏 만들어지지 않았다. 태국은 외환위기에 이른 과정의 잘잘못을 가린 ‘누쿨보고서’를 냈다. 외환위기를 연구하려면 관련 인사들의 회고록과 국회의 보고서를 뒤적여야 하는 우리 현실이 실망스럽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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