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사기 전까지 투자자들은 특정 종목의 장점과 단점을 객관적 잣대로 신중하게 비교한다. 하지만 사고 난 뒤에는 태도가 달라진다. 의도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자신이 산 종목에 대한 좋은 정보만 받아들인다. 나쁜 정보는 평가절하한다. 이른바 일관성의 법칙이다. 자신의 과거 의사결정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비즈니스 의사결정에서도 일관성의 법칙은 위력적이다. 이미 상당한 수익을 내는 등 ‘제도화’된 사업의 기반을 위협하는 신사업, 즉 자기 파괴적 사업 모델은 성장 가능성이 높더라도 조직에서 자주 외면당한다. 기존 미디어 기업들이 주력 사업에 직접적 피해를 줄 수 있는 인터넷이나 모바일 사업 모델을 적극 수용하거나 발전시키지 못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실제 가상 세계를 장악한 업체들은 구글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 투철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신생 벤처들이다.
기업들이 기존 비즈니스 모델에 집착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개인과 마찬가지로 조직도 과거 결정에 대해 일관성을 유지하려 한다. 과거 의사결정권자들은 애착을 갖고 있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보호하려는 강한 동기를 갖게 된다.
이런 동기를 논리적으로 뒷받침할 명분도 충분하다. 대표적인 게 파괴적 모델이 기존 사업의 기반을 훼손하는 자기잠식(cannibalization)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다. 또 새로운 모델은 일반적으로 불확실성이 크다. 성공할 수도 있지만 실패할 확률도 높기 때문에 새 모델 주창자들의 논리는 군색하다. 반면 자기잠식으로 인한 피해는 쉽게 눈에 띄고 매우 자극적이다. 따라서 성공 가능성을 확실히 보여주기 힘든 파괴적 모델은 조직에서 자주 외면당한다. 자기 파괴적 모델을 추진하려면 새로운 역량이 필요하다. 보통 기업들은 과거 사업모델에 적합한 역량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사업 추진이 쉽지 않다.
하지만 초경쟁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기 파괴적 혁신에 능한 기업이 승승장구하고 있다. 불행히도 이런 기업을 경쟁자로 둔 회사는 쇠락하고 있다.
자기 파괴적 혁신의 대표적 사례는 애플이다. 애플은 아이팟이 잘나갈 때 더 저렴하고 편의성을 높인 아이팟 나노를 출시했다. 이어 아이팟 기능을 고스란히 담은 아이폰을 출시해 또다시 기존 주력 제품의 경쟁력을 파괴했다. 아이폰의 경쟁력을 잠식할 수 있는 아이패드 출시도 주저하지 않았다. 노키아를 포함해 과거의 휴대전화 강자들은 애플의 자기 파괴적 혁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미국 DVD 대여업체인 넷플릭스도 마찬가지다. 원래 우편배달 업체로 출발했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비디오를 내려받는 서비스는 기존 사업의 기반을 파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과감하게 자기 파괴적 혁신을 단행한 넷플릭스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반면 오프라인 비디오 대여점 모델을 고집했던 블록버스터는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자기 파괴적 혁신은 초경쟁 환경에서 매우 유용한 전략이다. 스스로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파괴하는 시도를 하지 못하면 다른 경쟁자가 파괴적 모델을 들고 나올 것이고 결국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초경쟁 환경은 기업 경영자에게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는 용기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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