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내 초·재선 소장파 의원 22명이 어제 성명을 내고 앞으로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달 8일 여당의 내년 예산안 강행 처리를 비판한 것이다. 이 성명은 이른바 개혁 성향 초선 의원들의 모임인 ‘민본21’이 주도했다. 이들은 “예산안을 국민의 관점에서 심의 의결하지 못했고 행정부를 견제하는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으며 법안 처리에서 입법기관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음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번 강행 처리는 외양만 놓고 보면 국회의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내부에서 이처럼 비판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나온다는 것은 한나라당의 개방성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소장파 의원들의 ‘경솔함’을 탓하기에 앞서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진정성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우리 국회의 비정상적인 행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도 국회가 제대로 작동한 적이 거의 없다. 파행, 변칙, 폭력은 우리 국회를 규정하는 단어가 됐다. 폭력사태에 따른 정당 간 고소고발도 우리만의 진풍경이다. 도대체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소수 야당이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을 무시하고 사사건건 다수 여당을 누르려고 하는 상황에서 시급한 법안이나 예산안 처리를 마냥 미루는 것이 과연 능사인가. 이번 강행 처리에 원인을 제공한 측은 심의를 거부하고 표결을 방해한 야당이었다. 여야 간 타협이 불가능할 때 국회가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이 선거에서 여당의 소임을 맡겨준 국민의 뜻에 부응하는 길이라고 우리는 본다. 원인은 제쳐둔 채 결과만을 놓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소장파 의원들도 성명에서 언급했듯이 국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제도 개선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비롯해 앞으로도 여야 간에 마찰을 빚을 소지가 큰 의안(議案)이 수두룩하다. 야당이 물리력으로 심의와 표결을 방해해 국정이 표류하고 국익이 송두리째 날아가더라도 한나라당의 소장파 의원들은 그냥 보고만 있겠다는 건가. 국회가 파행을 거듭할 경우 그 대안(代案)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 여당의 일원으로서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인지, 소장파 의원들은 좀 더 깊이 헤아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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