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학과 취업 시즌인 요즘 특성화고(옛 실업고) 앞을 지나다 보면 ‘A대학 아무개 합격’ ‘B기업 ○명 입사’라고 쓴 현수막이 눈에 띈다. 학생들을 진학시키고 취업시켰다는 자부심이 배어 있다. 새 출발을 앞둔 졸업생들에게 격려와 응원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재학생에게 “나도 선배들처럼 되고 싶다”는 꿈과 도전의지를 심어준다. 학교는 내년에 올해보다 더 자랑스럽고 화려한 현수막을 내걸기 위해 힘을 모을 것이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서울시내 초중고교 교문에 졸업생들의 국제중학교 특목고 명문대학 진학 실적을 홍보하는 현수막을 걸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런 현수막이 학교 서열화와 학생 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관점이다. 국제중 특목고 명문대의 입시경쟁을 과열시킨다는 걱정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의 좌절감을 배려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교육감이 간섭하기 시작하면 학교현장의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동력을 차단하게 된다. 학교와 교사가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쳐 좋은 실적을 내면 더 큰 의욕과 자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성과가 현수막을 통해 널리 알려지면 학부모와 지역사회의 칭찬이 따르고, 재학생도 선배들의 성취에 자극을 받아 학업에 열의를 가질 수 있다.
중학교 졸업예정자들이 고교 선택을 앞둔 현 시점에 어떤 고교가 어떤 대학에 몇 명을 진학시켰는지는 매우 중요한 정보다. 고교선택제의 목적은 학교 간 경쟁을 통해 공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 곽 교육감의 평등교육 집착은 고교선택제의 취지를 부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접근방식이라면 앞으론 성적이 뛰어난 학생들에게 상도 주지 말고 박수도 치지 말아야 한다.
곽 교육감은 취임하자마자 학업성취도 평가를 무력화하고, 전면 무상급식과 체벌금지를 추진해 교육현장을 평등이념의 어설픈 실험장으로 전락시켰다. 그제는 일선 학교가 국어 영어 수학 수업시간의 20%를 재량에 따라 증감할 수 있는 권한을 축소해 10% 이내로 제한했다. 학교 자율권에 대한 침해다.
곽 교육감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코드에 맞는 좌파적 교육정책을 펴는데도 올 3월부터 10월까지 전교조 조합원 가운데 서울의 가입교사 수가 가장 많이 줄었다. 교사들 사이에 전교조 교육이념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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