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장환수]스포츠 강국 vs 스포츠 선진국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2월 17일 03시 00분


지난달 광저우 아시아경기 때다. 왕기춘이 유도 남자 73kg급 결승에서 일본의 아키모토 히로유키에게 진 것을 두고 말이 많았다. 왕기춘은 준결승 때 왼발을 다친 아키모토를 맞아 상체 공격만 하다 졌다. 금메달을 딴 아키모토는 “왕기춘은 나의 부상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하고 싶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데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국내 언론은 이를 일제히 인용 보도했다. 그러나 일본 언론은 아키모토의 진통제 투혼만 전했지 왕기춘의 페어플레이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역시 일본은 가깝지만 먼 이웃인가. 최소한 이 경우엔 그렇지 않다. 일본 언론은 아키모토의 값진 금메달 역시 아주 짧게 보도했다. 당시 일본 언론의 광저우 아시아경기 보도는 대부분 그랬다. 그 대신 야구, 스모, 프로레슬링, 격투기 등 자국 내 리그를 훨씬 크게 다뤘다.

한국은 광저우 대회에서 일본을 제치고 4회 연속 아시아경기 2위를 차지했다. 대회 중반 한국의 금메달이 일본의 두 배에 육박하자 일부 국내 언론은 한국과 일본의 희비를 스포츠면 헤드라인으로 다루기도 했다. 본보도 취재를 해봤지만 바로 난관에 부닥쳤다. 환희에 찬 한반도는 있어도 충격에 빠진 일본 열도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본 스포츠계는 이런 식으로 일반적인 예상을 비켜가는 경우가 많다. 9월에 열린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비록 우승컵은 한국에 내줬지만 대단한 명승부 끝에 은메달을 차지했을 때도 일본 언론의 보도는 한 줄이었다. 이달 초 2022년 월드컵 유치 실패 때도 그랬냐는 정도였다. 종합대회가 있거나 무슨 일만 터지면 일희일비하는 우리와는 영 딴판이다.

그렇다고 일본의 스포츠시장이 침체돼 있느냐면 오히려 정반대다. 프로야구는 지난해 2240만 명의 관중을 동원했다. 한신과 요미우리는 각각 300만 명의 홈 관중을 유치했다. 두 구단만 합해도 국내 전체 야구 관중과 맞먹는다. 2002년 6월 한일 월드컵 때도 일본의 야구 관중은 전년과 대비해 약간 늘어났다. 일본의 스포츠시장이 얼마나 다변화돼 있고, 자생력이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면 당시 국내 프로야구 관중은 20% 가까이 급감했다.

일본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한국에 순위가 밀리기 시작했다. 아시아경기는 1986년 서울 대회부터다. 바로 이때는 일본이 새로운 스포츠 패러다임을 실험한 시기다. 일본은 당장 눈앞의 메달은 포기하더라도 생활체육과 육상 수영 등 기초종목 육성에 힘썼다. 또 학교와 클럽 스포츠를 통한 스포츠 인재 육성에 매달렸다. 그 결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선 16개의 금메달을 따며 5위에 올라 한국(9위·금메달 9개)을 압도했다.

한국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는 스포츠 강국이다. 올림픽에선 1984년 이후 7차례의 대회에서 6번이나 톱 10에 들었다. 아시아경기에선 1994년 히로시마 대회 때 일본보다 금메달 1개가 적었을 뿐 올림픽과 마찬가지로 최근 7차례의 대회에서 6번이나 일본을 이겼다. 겨울올림픽에선 2006년 토리노 대회부터 아시아의 맹주가 됐다. 올해 초 열린 밴쿠버 대회에선 쇼트트랙 편중 현상을 깨고 피겨의 김연아와 스피드스케이팅의 빙속 삼총사가 맹활약했다.

하지만 스포츠 강국이 능사는 아니다. 국내 리그가 활성화되고, 많은 국민이 스포츠를 즐기는 일본을 벤치마킹해야 할 이유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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