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정모 씨(64·충남 홍성군 은하면)는 가슴이 자주 아팠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심폐기관이 좋지 않다”고 말하곤 했다. 가족력 때문이겠거니 생각하던 정 씨의 생각이 달라진 것은 ‘석면(石綿)’에 대해 알고부터. 1970년대 충남 홍성군 광천 석면광산에서 근무했던 그는 지난해 검진 결과 ‘석면 질환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정 씨는 최근 희소식을 접했다. ‘환경성 석면 노출로 인한 건강 피해자에 대한 구제제도’(석면피해구제제도)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는 것. 피해자는 자신이 거주하는 시군구에서 보상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피해가 인정되면 요양급여(의료비), 생활수당 등 연간 최대 1488만 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막상 보상신청을 하려고 하자 어려움이 컸다. 석면노출 확인질문서, 폐 조직검사 서류, 석면검출자료 등 각종 증명서를 첨부해야 했기 때문. 정 씨는 “제출해야 할 증명서가 너무 많다”며 “약한 몸으로 폐 조직을 떼는 검사를 받기가 두렵다”고 말했다.
정 씨처럼 ‘절차가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들어 사실상 보상을 받기가 힘들다’는 석면피해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충남 보령 석면광산 인근에 살아온 신모 씨(59)는 “석면이 폐에 쌓여 폐가 딱딱해지는 증상이나 석면이 폐를 감싸 흉막이 두꺼워지는 증상은 보상이 안 되더라”고 말했다. 실제 보상되는 질환은 흉막에 종양이 생기는 ‘원발성(原發性) 악성중피종, 석면으로 호흡장애가 일어나는 원발성 폐암, 석면 가루로 기관지, 폐 등에 염증이 생기는 석면폐증뿐이다.
까다로운 신청과정 때문인지 한국환경공단이 10일부터 피해 보상 신청을 받았지만 19일 현재 신청자는 10명뿐. 일부 지역에서는 ‘석면 브로커’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석면공장이나 탄광 인근 주민에게 보상이 결정되면 비슷한 사례의 주민들을 모아 관련업체에 집단소송을 걸고 보상금을 나누려는 브로커들만 활개 치고 있다는 것.
석면피해자들의 불만에 대해 정부는 “폐암 등은 석면이 아니라 흡연 등 다양한 원인으로 유발되기 때문에 보상에 앞서 검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해가 되는 해명이다. 하지만 석면피해자 중 상당수는 생활이 어려운 저소득층이다. 더구나 석면병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환경성 질환’이다. 석면공장에서 일하지 않았어도 오래된 빌딩, 지하철 역사, 재개발공사 인근에 살아도 병에 걸릴 수 있다.
2주 후면 석면피해구제제도가 시행된다. 내 가족이 석면병에 걸렸다면 어떨까? 피해자 처지에서 제도의 미비점을 점검해 전향적으로 해결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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