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야기된 한반도 긴장국면에서 러시아의 역할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러시아의 공식 요구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9일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하루 전에는 비탈리 추르킨 러시아 유엔대사가 기자들에게 “한반도에서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긴장 고조에 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며 회의소집 배경을 설명했다.
남북관계에 최근 中과 달라진 입장
이에 앞서 러시아 외교부는 연평도 일원에서의 한국군 사격훈련을 취소하라는 성명을 발표한 뒤 자국 주재 한국 대사와 미국 대사를 불러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과 달리 러시아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두 차례나 비난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러시아가 자신의 값어치를 올리기 위해 중립적이고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고 지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한반도에서 러시아 최대의 안보이익은 비핵화와 전쟁방지로 요약된다. 국경선을 마주한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상황에 따라 러시아 극동지역의 안보를 훼손하는 중대한 안보적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만 한국 일본 등 잠재적 준(準)핵국의 연쇄무장을 촉발시키고 미국의 미사일방어(MD) 구축과 일본의 재무장 빌미를 제공해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화를 해친다.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러시아의 안보이익상 개입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전략적 딜레마를 안겨준다. 전쟁에 따른 탈북 난민의 극동지역 유입은 러시아에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이 된다. 시베리아 극동지역 개발은 물론이고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사업에도 심대한 지장을 초래한다. 러시아가 한반도에서의 영향력 유지를 위해 기본적으로 대북 포용정책을 유지하면서도 1, 2차 핵실험 시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찬성하고 동참한 이유와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강한 어조로 비난한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중국의 6자회담 재개 제안을 러시아가 수용한 배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사안은 동북아에서 러시아가 추구하는 또 다른 핵심적 안보이익, 즉 과거 소련시대부터 줄기차게 주장한 동북아다자안보협력기제의 창설 문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러시아는 북핵 6자회담을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한 유용한 대화체로 생각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6자회담 구도를 한반도평화체제와 동북아다자안보체제로 전환하려는 원대한 구상을 갖고 있다. 동북아다자안보기구의 창설은 역내에서 러시아가 무임승차할 수 있는 다양한 지정학적 이익을 제공한다. 따라서 북핵 6자회담이 형해화하면 그 가능성이 줄어들기에 러시아는 중국의 6자회담 재개 요구에 외교적 공명을 보낼 수밖에 없다.
러 이익 존중하는 정책으로 유인을
러시아에 북한은 적자만 내는 국가다. 효용가치라 한다면 북한이 미일동맹체제의 안보적 방역선이고 남한을 길들이는 데 유용한 지렛대라는 점이다. 러시아는 북한보다도 한국과 훨씬 더 다양하고도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안보적 이해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북한을 일정수준 감싸는 이유는 미국의 품안에 있는 한국에 대한 본능적인 견제와 북한과의 관계 악화가 과거 한반도 4자회담에서 러시아가 배제된 경우처럼 한반도에서 모스크바의 영향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학습효과 때문으로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이로부터 러시아를 외교적 원군으로 유인할 수 있는 정책대강을 제시할 수 있다. 한국의 국익과 안보에서 러시아가 특별한 비중을 차지하고 미국이 아시아의 친구를 규합해 한반도 및 동북아에 대한 러시아의 불리한 정치안보적 구조를 주조하는 데 한국이 적극 가담할 의사가 없으며,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합당한 이익과 위상을 존중하겠다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는 가운데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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