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뜬 설렘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는 때다. 대목을 맞아 한밑천 챙기려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의 장삿속에 휘말린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챙겨야 할 가족 연인 친구의 명단을 적어나가는 손놀림은 가볍고 경쾌하다.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밸런타인데이,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생일, 졸업식, 입학식 등 수많은 기념일에 우리는 선물을 주고받는다. 선물을 주고받는 행동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되어 선물이 없는 일상을 상상하기조차 쉽지 않다.
선물 주고받기가 모든 사회에서 나타나는 인간 본성의 일부임은 찰스 다윈이 비글호 항해에서 남긴 기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다윈은 남미의 외딴섬에서 만난 원주민이 선물의 개념을 또렷이 이해함을 알고 경악한다. “나는 한 남자에게 큰 못(이 섬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주었다. 답례를 바란다는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즉시 물고기를 두 마리 꺼내더니 창에 꿰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놀랍게도 인간에게는 숨쉬기만큼 자연스러운 나눔이 다른 영장류에선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을 사냥한 으뜸 침팬지 수컷은 막 포식할 찰나에 다른 암컷이나 친구가 맛없는 부위를 한 점 집어가도 모르는 척 눈감아주곤 한다. 이는 허락된 도둑질이지 진정한 의미의 선물이 아니다. 야생 상태에서 침팬지가 맛있는 살코기를 다른 침팬지에게 자발적으로 먼저 주는 경우는 관찰된 바 없다. (그러니 크리스마스이브에 여자친구에게 저녁 한 끼를 사려고 계획하는 남자는 얼마나 기특한가.)
엄마 침팬지조차 예외는 아니다. 자기 먹이를 자식이 조금 떼어 먹는 일을 용인할 뿐이지 입 안에 먼저 넣어주는 일은 거의 없다. 어쩌다 가끔 인심을 쓰긴 하는데 이때는 맛 좋은 고기가 아니라 질긴 나무줄기처럼 엄마가 싫어하는 먹이의 뒤처리를 자식에게 맡기고자 함이다. 침팬지보다 평화를 더 사랑하는 영장류로 이름난 보노보에게도 자식은 어미의 먹을거리를 그나마 좀 더 쉽게 뺏어먹는 권리를 누릴 뿐이다. 인간의 아이처럼 엄마가 차려주는 진수성찬을 즐기는 호사는 꿈도 꾸지 못한다.
보답을 받지 못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귀중한 자원을 다른 개체와 자발적으로 공유하려는 성향이 인간 고유의 특성임은 어린아이와 침팬지 어른의 행동을 비교한 실험에서 확인된다. 침팬지에게 혼자서 사과를 한 알 얻는 선택지와 자기와 더불어 옆의 침팬지도 사과를 한 알씩 얻는 선택지 둘을 제시한다. 자기가 얻는 이득은 어차피 똑같으므로 침팬지에게 남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두 선택지를 취할 확률은 같을 것이다. 실제로 침팬지는 50 대 50의 확률로 선택한다.
만 두 살 이상의 어린아이는 자기만 사과를 하나 갖는 선택지보다 옆의 어른도 사과를 하나씩 갖는 선택지를 더 자주 선택한다. 아이를 돌본 경험이 있다면 아이가 만면에 미소를 띠며 자기 딴에는 아주 큰 선물-그래 봤자 스티커나 막대사탕-을 부모나 어른의 손바닥에 쥐여주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인간이 자연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협동적인 동물로 진화했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이 진행 중이다. 어떤 학자는 집단 간의 투쟁이 자기 집단 내의 사람에 대한 선의와 맞물려 진화했다고 본다. 다른 학자는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 조부모 삼촌 숙모가 모두 매달려서 아기를 키웠던 인간의 독특한 진화 역사가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낳았다고 본다. 크리스마스이니만큼 딱딱한 논의는 잠시 접어두자. 선물을 주고받는 기쁨을 누리게끔 진화한 종의 일원으로 태어난 행운을 남은 기간에 만끽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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