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대기업이 영세업체의 상권을 침해하는 것은 문제죠. 정부의 친서민 기조에도 맞지 않고….”(경제 부처의 한 당국자)
“그렇게 단순한 문제일까요. 질 좋고 값싼 제품이 시장에 등장하면 ‘서민 소비자’가 가장 많은 혜택을 보게 될 텐데요.”(또 다른 당국자)
통큰치킨의 판매는 일주일 만에 중단됐지만 경제 부처가 모여 있는 정부과천청사에서는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점심 메뉴가 김치찌개든 칼국수든 요즘 밥상머리 대화 소재는 치킨이다. 기자도 여러 차례 이런 ‘치킨게임 논쟁’에 참여했지만 한 번도 명쾌한 결론을 얻지 못했다. 사악한 대기업과 선량한 영세 자영업자의 대결이라면 약자의 손을 들어주면 된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친서민 대 친소비자’, 더 들어가면 ‘서민상인 대 서민소비자’의 복잡 미묘한 양상을 띤다.
이명박 대통령조차도 “영세 상인들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소비자가 싸게 치킨을 먹을 수 있는 권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빠도 좋지만 엄마도 좋다’는 식으로 들리는 이 발언도 롯데마트가 판매 중단을 선언한 이후에야 나왔다.
민심도 갈린다.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리얼미터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영세상인 보호 차원에서 판매 철회에 찬성한다’(44.4%)가 ‘값싼 치킨을 구매할 수 없어 반대한다’(39.6%)를 근소하게 앞섰다. 연령별 의견도 많이 엇갈린다. 30대는 반대(60.2%)가 찬성(29.7%)의 2배를 넘었다. ‘적정한 치킨 가격’을 묻는 질문에서는 ‘7000∼9000원’(36.4%), ‘5000∼7000원’(23.8%)이 다수였다. 영세 상인의 피해를 같이 걱정하지만 1만5000원 안팎의 프랜차이즈 치킨 값은 너무 비싸다는 여론이 읽힌다.
기획재정부의 한 당국자는 사견을 전제로 “‘값싼 치킨을 먹고 싶다’는 최근의 온·오프라인 소비자운동이 앞으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주목하고 있다. 소비자 후생에 대한 정책적 중요성이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진국 배재대 교수는 자유기업원 기고문에서 통큰치킨 판매 중단에 항의하는 소비자들의 움직임을 ‘소비자혁명의 시발점’이라고까지 표현했다.
통큰치킨 판매가 결국 일주일 만에 중단된 것은 우리 사회가 내 이웃이기도 한 영세상인에게 피해를 주는 치킨을 아직은 ‘소화’시킬 수 없음을 뜻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동반성장의 묘안을 찾는 일은 치킨게임에서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걸 찾아서 값싸고 맛있는 치킨을 마음 편하게 먹을 수 있게 해주는 정부가 ‘좋은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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