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재승]사회적 처벌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 Array
  • 입력 2010년 12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테크놀로지 관점에서 2010년을 한마디로 규정하자면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이다. 애플사의 아이폰을 필두로 여러 회사에서 똑똑한 휴대전화를 내놓았고 아이패드나 갤럭시탭과 같은 ‘카우치 디바이스(Couch Device·소파에서 가지고 놀 만한 크기의 비디오 게임기나 팜 컴퓨터)’까지 출시해 정보기술(IT) 하드웨어 시장의 지형도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통신장비로만 여겼던 휴대전화, 그러나 정작 휴대전화의 통화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 이내에 불과했다. 나머지 시간 내내 손 안에서만 꼼지락거렸던 휴대전화에 컴퓨터 기능을 부여하자 사람들은 하루 종일 즐기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디지털카메라 판매를 시들하게 만들었고 비디오게임기 판매마저 주춤하게 했다.

여기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대표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가 가세하자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화장실이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잠깐, 택시 안에서 짬짬이, 혹은 잠자기 전 침대 맡에서 잠시, 사람들은 트위터에 글을 남기고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린다. 도시 곳곳에선 온통 폐쇄회로(CC)TV가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촬영하고 개인의 일상이 스마트폰으로 기록되는 시대. 게다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이 일상적 동영상을 전 세계로 빠르게 퍼뜨릴 수 있는 미디어환경을 제공하자, 지난 1년간 우리 사회는 폭력과 성추행으로 가득 찬 동영상으로 넘쳐났다.

여교사를 성희롱하는 남학생이나 학생을 때리는 교사의 체벌이 적나라하게 담긴 동영상이 인터넷에 연일 올라오고, 지하철이나 버스 속 범죄행위가 여과 없이 소셜 네트워크를 타고 빠르게 퍼졌다.

핸드폰으로 누구나 동영상 찍어

예전 같았으면 그냥 묻혀버렸을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범인 검거로까지 신속하게 이어지게 된 것은 개인미디어 시대의 유익이다. 하지만 이들 동영상은 ‘피해자의 모습도 그대로 담긴, 때론 폭력적이고 성적인 내밀한 사적 정보’다.

검찰이나 법원에 제출되어야 마땅한 증거물이 사이버 세계를 떠돌며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신문과 TV는 이를 ○○녀, ○○남이라는 이름을 붙여 선정적으로 보도한다. 누리꾼은 동영상 속 인물들을 추적해 개인 신상정보까지 인터넷에 폭로하고 악플로 사회적 처벌을 감행한다.

왜 이런 현상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다. 이런 동영상을 찍어 경찰에 제출한다고 해서 범인 검거를 위해 얼마나 애쓸까에 대한 뿌리 깊은 의구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민들이 직접 사회적 처벌을 하겠다고 나선 형국이다. 특히나 성범죄처럼 친고죄인 경우엔 피해자가 직접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아 주변 인물의 촬영이 범인 검거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동영상을 본 사람들의 ‘공분’을 근거로 사회적 단죄를 하는 일이 항상 적절한 것은 아니다. 카메라에 포착된 동영상의 시각적 폭력성이 공분의 크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보여지는 모습이 얼마나 충격적인가로 죄질을 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최근 우리 영화의 폭력 수위가 한계에 다다랐듯 언론에서 보도되는 동영상의 수위도 폭력영화를 방불케 한다.

게다가 동영상 포착이 어려운 ‘공적인 영역에서 벌어지는 부정’이나 ‘조직적인 범죄’는 외면한 채, 시민의 개인 범죄에만 사회가 지나치게 흥분하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후퇴시키는 범죄는 대개 카메라로 담기엔 너무 평온한 가운데 자행될 수 있다.

심지어 회자되는 동영상이 실제 상황인지, 연출된 자작극인지도 분간하기 어렵다. 노트북으로 누구나 쉽게 편집이 가능한 시대에 우리 모두는 세상의 부조리를 취재하는 시민기자이자, 동시에 무료한 일상을 극적인 영화처럼 편집할 수도 있는 감독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영상 유포하면 안되는 기준은?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에 어떤 동영상을 올려야 하는지, 또 올리면 안 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른한 봄날의 오후,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 첫 경험 얘기해 주세요!”라고 짓궂게 조를 수는 있다. 그러나 선생님의 얘기를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면 범죄가 된다. 친구를 괴롭힌 장면이나 선생님을 희롱한 상황만이 아니라, 타인의 내밀한 사생활도 그 자체로 올리면 안 된다.

범죄 현장의 증거 동영상이 ‘소녀시대’의 뮤직비디오와 함께 나란히 유튜브에 올라가 있는 사회, 성희롱과 집단폭행으로 얼룩진 동영상이 ‘19금 영화 예고편’ 보듯 회자되는 우리 사회는 이미 ‘위험한 사회’다. 2011년에는 찍어도 되는 것에 대한 기준, 인터넷에 올려도 되는지에 대한 기준, 그리고 이를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태도에 대한 논의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