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키친 알코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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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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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 tvN의 인기드라마 ‘막돼먹은 영애 씨’의 여주인공 영애는 서른 살 넘은 뚱뚱한 노처녀. 영애 씨는 ‘예쁘고 착한’ 여주인공의 고정관념을 과감히 배신한다. 연애에는 번번이 실패하면서도 여학교 앞에서 바바리를 젖히는 노출남(男) ‘바바리맨’이나 ‘버스 추행남’을 가차 없이 응징한다. 그는 술을 안 마시겠다고 번번이 다짐하면서도 만취해 결국 필름이 끊겨 버린다. 알코올 의존증(알코올 중독)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2009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남성의 음주율은 75.8%, 여성은 43.4%에 이른다. 음주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듯 알코올 의존증도 마찬가지다. 남편이 출근하고 자녀들이 학교에 간 뒤 집 안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여성을 ‘키친 알코홀릭’이라고 부른다. 여성 알코올 의존증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여성 중독자가 국내에도 60만 명은 될 것이라고 의료계는 추정한다. 주부뿐 아니라 직장에 다니는 커리어우먼 중독자 비율도 급증하고 있다.

▷‘여성 흡연자는 헤프다’는 편견이 지배하던 시절에 27년간의 흡연 경험을 ‘여성흡연잔혹사’라는 책으로 펴낸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전 언론인)은 ‘몰래 흡연’으로 인해 금연할 기회를 갖기도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여성 음주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어쩌다가 중독될 때까지 술을 마시느냐”는 사회적 편견으로 알코올 의존증 사실을 숨기게 되고 중독을 스스로 고칠 기회를 놓친다. 문제를 포착해야 해결책이 나오는 법인데 여성 음주가 사회적으로 노출되지 않으니 심각성을 모르고 지나가기 쉽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체로 여성이 남성보다 술에 취약하다. 여성은 남성보다 체내 수분이 적은 대신 지방이 많고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져 같은 양을 마셔도 쉽게 취한다. 알코올의 지속적인 섭취는 여성에게 과다월경 혹은 무월경, 유방암 발생비율을 높인다. 여성 음주운전 사고 증가율은 남성의 3배에 이른다. 알코올은 어떤 성분보다도 태반을 잘 통과해 임신부의 음주는 태아에게도 치명적이다. 자녀 양육에도 부정적 그늘을 드리우고 가정 해체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장롱과 부엌 찬장에 숨겨진 술병부터 없애는 것이 중독 치료의 시작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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