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는 무더위에 벌레 피해가 엄청나거든요. 11억 인구의 시장이 열리는데 굴러온 복을 안 잡고 뭐하는 짓이랍니까?”
지난주에 인도 뭄바이로 출장을 갔다가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여행사 사장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올해 10월 인도의 유통 대기업 구매 담당자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이 사장은 인도 기업인들의 요청에 따라 한 지방산업단지의 방충제 제조업체 A사를 찾아가게 됐다. 인도 바이어들은 A사의 제품에 높은 관심을 보였고 A사도 만족스러워했다.
문제는 일행이 인도에 돌아온 뒤에 벌어졌다. 인도의 구매 담당자가 “A사에 아무리 e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안 온다. 뭐가 잘못된 거냐”라며 여행사 사장을 찾은 것. 인도 기업은 방충제의 향을 자신들이 보내는 샘플대로 바꿀 수 있는지를 궁금해했고, 여행사 사장이 A사에 한글로 e메일을 보냈더니 문제없다는 답신이 바로 왔다.
한데 인도 기업이 샘플을 보낼 주소를 A사에 묻자 또 답장이 오지 않았다. 여행사 사장은 “A사가 인도 기업에 물어야 할 내용도 자꾸 내게 물었다”며 “영어로 e메일을 읽고 쓰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고 말했다. 몇 달간 연락이 원활하게 되지 않자 인도 기업은 이미 마음이 떠난 듯하다고 한다. 여행사 사장은 “그 지역 도청에 투자담당과가 있을 테니 도움을 청해 보라고도 조언해줬는데…”라며 아쉬워했다.
외국계 컨설팅사에서 일하는 기자의 친구도 독일 바이어들과 함께 최근 경남지역의 한 중견 소재기업 B사를 찾았다가 낭패를 봤다. 상대 회사를 제대로 조사해보지 않은 B사가 미팅 장소에 실무 팀장을 내보내 회사 홍보 영상을 틀어준 것. 기자의 친구는 “구매담당 최고 임원의 직함이 ‘디렉터’인 걸 보고 부장쯤으로 여긴 듯했다”며 “인터넷으로 B사를 1차 조사해보고 만나서는 독일식으로 바로 본론에 들어가길 기대했던 바이어들이 퍽 민망해했다”라고 전했다. 뒤늦게 독일 회사의 구매 규모나 미팅 상대방의 중요성을 알아차린 B사는 바이어들의 질문에 준비 안 된 답변을 하며 쩔쩔매다 기자의 친구에게 “근사한 곳으로 저녁을 모실 테니 그때까지만 시간을 끌어 달라”고 부탁했다. 이 거래도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
이 두 회사의 사례가 일반적인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취재를 하며 탁월한 글로벌 감각을 가진 중소기업인도 많이 봤지만, 대기업 관계자들이 “한국의 중소기업들도 수준을 좀 높여야 한다”고 불평하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우리가 안 되는 것은 대기업의 횡포 탓’이라고 주장하며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못 벗어나는 중소·중견기업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뭄바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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