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일 발표한 신년공동사설을 받아든 기자가 가장 주목한 단어는 ‘핵 참화’였다. 북한이 신년사설에서 핵 참화를 언급한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뉘앙스가 달랐기 때문이다. 북한은 2006년 신년사설에서 “대조선전략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우리 겨레에게 핵 참화를 들씌우는 것도 서슴지 않으려는 것이 미제의 본능”이라고 했다. 핵 공격의 주체는 미국이고, 북한은 그 대상이었다.
올해 사설은 “이 땅에서 전쟁의 불집이 터지면 핵 참화밖에 가져올 것이 없다”고 했다. 앞뒤 문맥상으로 한국과 미국이 전쟁을 도발하면 핵으로 응징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핵 공격의 주체는 북한이고, 그 대상은 남한이다.
북한의 대남 핵 위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8월 24일)과 김영춘 인민무력부장(12월 23일)이 ‘핵 억제력에 기초한 성전’을 언급했고, 노동신문도 ‘핵 참화’를 언급했다. 하지만 북한에서 ‘장군님(김정일 국방위원장) 말씀’으로 통하는 신년사설에 남측을 겨냥한 핵 위협이 처음 실린 것은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통일부는 1일 배포한 분석보고서에서 ‘핵 참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한 당국자는 “지난해 많이 나온 내용”이라고만 말했다. 통일연구원이 낸 보고서에도 ‘핵 참화’는 없었다. 한 대학교수는 “어차피 공갈인데…”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1일 통신과 방송이 전한 북한 신년사설 보도의 핵심 제목은 ‘남북 대결상태 해소’였다. 같은 내용을 보도한 AP통신의 제목이 ‘북한이 전쟁은 핵 참화를 부를 것이라고 경고했다’인 것과 정반대였다.
최근 북한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핵 보유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지난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같은 무력도발을 잇달아 자행한 것도 핵실험을 두 번이나 하고 우라늄 농축시설까지 공개한 뒤 생긴 자신감 때문이라고 본다.
북한의 핵 위협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데도 마냥 태연한 남측 사람들을 보면 점점 뜨거워지는 실험실 냄비 속에서 위기를 못 느끼는 개구리가 연상된다. 인질이 오히려 납치범을 걱정하는 ‘스톡홀름 신드롬’이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
그동안 적지 않은 당국자와 전문가들이 북한의 핵 위협에 안이하게 대응해 왔다. 심지어 북의 핵개발은 미국에 맞선 자위용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핵구름이 서울 상공을 뒤덮은 뒤에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설마가 사람 잡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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