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9일 첫 구제역 발생 발표가 나온 지 5주가 지났건만 정치권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원회만 통과한 채 잠을 자고 있다.
그런 여야가 새해 들어 느닷없이 구제역 책임공방에 나섰다.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3일 논평에서 “민주당이 또다시 전국 순회 장외투쟁을 하겠다고 하니 구제역을 옮기고 다니지는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배은희 대변인도 4일 “민주당은 가축법 통과를 미뤄 구제역 확산을 방치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는지 대답하라”고 공세를 폈다.
이에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4일 “그런 게 집권여당의 낯으로 할 수 있는 소리냐. 철면피 아니냐”며 “정부는 연평도도 못 지키고 소, 돼지도 못 지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병헌 정책위의장도 “(한나라당의 주장은) 개그 소재가 될 수 있는 코믹한 일이다. 이러한 책임 전가는 가히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다”며 “4대강 사업 관련 차량들이 전 국토를 헤집고 다닌 것이 구제역 창궐 동기가 아닌가”라고 맞받았다.
이 같은 여야의 공방은 참으로 낯 뜨거운 일이다. 축산농민들은 자식처럼 길러온 소, 돼지를 땅에 묻으면서도 그동안 정치권을 탓하지는 않았다. 정치권이 현장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함께 느끼면서 하루빨리 제도적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할 뿐이다.
구제역은 지난해 세 번이나 발생했고 그때마다 제도 개선 목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정치권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상 최악의 구제역 사태로 번진 지금도 가축법이라는 당리당략과 무관한 법안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해외로부터의 구제역 전염 예방대책을 강화한 가축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당시 이 법이 통과됐더라면 오늘의 재앙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의석 절대 다수를 갖고 있으면서도 지금껏 입법을 미뤄온 한나라당은 이제 와서 “민주당이 본회의를 열어주지 않고 있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자기 당 소속인 최인기 국회 농림수산식품위 위원장이 대안발의해 지난해 12월 22일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을 “‘사후약방문’ 격이라 쓸모없다”며 외면하는 민주당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다.
구제역 재앙마저 정쟁의 소재로 전락시킨 여야의 행태가 계속된다면 축산농민들은 두 눈에 눈물 대신 분노를 담고 정치권에 책임을 따져 물을 것이다. 여야가 최소한의 양식이라도 있으면 볼썽사나운 책임 전가를 그만두고 구제역 대책 마련에 시급히 머리를 맞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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