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전교조의 아바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5일 20시 00분


‘그동안 시도 단위 일제고사에 대한 명확한 공식 방침을 유보해오던 서울시교육청이 전교조 서울지부와의 정책협의를 거쳐 마침내 폐지를 확정했다.’ 지난해 11월 29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서울지부가 ‘투쟁속보’에서 밝힌 내용이다. 이틀 뒤인 12월 1일 시교육청이 같은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같은 날짜의 ‘투쟁속보’엔 학교장 평가에서 학업성취도 향상 반영을 폐지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시교육청은 12월 22일 동일한 내용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전교조가 먼저 나가고 교육청이 뒷북을 치는 꼴이다.

▷서울시교육청이 쏟아내는 일련의 교육방침을 보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친(親)전교조를 넘어 전교조의 아바타(분신)가 된 것 같다. 전교조 서울지부는 단체협약 본교섭을 앞두고 시교육청에 ‘2010 단체교섭 10대 과제(안)’를 전달한 바 있다. 방과후 학교 강제 실시 땐 제재, 중학교 국어 영어 수학 수업 과다 금지, 교장 인사권 견제 같은 내용이다. 곽 교육감은 여기 나온 내용을 하나하나씩 자신의 정책이라며 발표하는 형국이다.

▷그는 좌파성향의 시민단체들이 정한 이른바 ‘진보진영 단일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당선 직후엔 “저를 지지하지 않은 65%의 마음도 헤아리겠다”며 취임준비위원회에 전교조 교사 출신을 포함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지키지 않은 전력이 있다. “전교조 관계자 중에는 국민정서와 동떨어지고 내가 동의 못하는 부분들도 있다”고 하더니 내놓는 방침마다 전교조 판박이다. 말로는 아닌 척하면서 전교조의 지시를 따라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속사정이라도 있는지 궁금하다.

▷디지털 세계에서 아바타는 실존 인물의 확장된 자아(自我)다. 전교조는 곽노현이라는 확장된 자아를 두어 좋겠다. 거칠게 말해 곽노현은 전교조의 도구라는 얘기다. 교육과학기술부는 각 시도교육청에 교육정책이나 인사에 관여하는 단체협약은 맺지 말라고 지침을 내렸다. 전체 교원 41만8000명 가운데 15%(6만667명)도 안 되는 전교조가 서울의 교육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과연 온당한지도 의문이다.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비전교조 교사들은 이렇게 철저히 무시돼도 되는가. 교육 수요자들도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처럼 힘을 합쳐 싸워야 할 모양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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