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 발기인 중 박 전 대표를 제외한 77명의 구성은 정·관·재계와 학계, 법조계 등을 망라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중 75%인 58명이 대학교수(강사 포함)다.
연구원에 학자가 많은 걸 시비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연구원이 아직까지 부동의 지지율 1위 대선주자의 싱크탱크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공무원이나 언론인, 기업인이나 직장인이 발기인에 이름을 올리려면 자신의 직(職)이나 업(業)을 걸어야 한다.
리스크 없고 잘되면 대박
교수는 다르다. 밑져야 본전이다. 발기인 4명 중 3명이 교수인 것은 이런 신분보장과 깊은 관계가 있다. 국가 미래를 연구하고, 어쩌면 향후 국가정책의 산실이 될 수 있는 연구원 발기인이 특정 직업에 편중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연구원에는 학문적 성취를 정책으로 구현하려는 순수한 열정으로 참여한 교수들이 많을 것이다. 그들의 사회참여 열의를 깎아내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대선이나 총선의 계절이 다가오면 ‘정책’보다는 ‘정치’를 노리는, 너무 많은 폴리페서(Polifessor)들이 횡행하는 게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14∼16대 국회 때까지만 해도 교수 출신 국회의원이 10명을 넘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17대 총선에서는 비례대표를 포함해 54명이 출마해 26명, 18대에는 42명이 출마해 19명이 당선됐다. 교수라고 금배지 달지 말란 법은 없다. 문제는 금배지를 달고도 대부분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캠프에 참여하는 교수들은 훨씬 많다. 일찌감치 한나라당 대선주자가 이명박, 박근혜 후보로 압축된 2007년 대선은 역대 어느 대선보다 많은 교수들이 뛰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폴리페서의 계절’이란 시리즈를 연재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본보 취재에 따르면 1000명도 넘는 교수들이 크고 작은 대선캠프에서, 공개리에 혹은 물밑에서 활동했다.
이번 대선은 어떨까. 지난해 개인적으로 대학가를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벌써 교수 사회가 어느 대선보다 조기에, 한층 더 광범위하게 과열될 조짐이 보인다. 대선을 2년 앞두고 1위 주자의 싱크탱크가 출범한 것도 그런 움직임에 기름을 끼얹을 것 같다.
대선캠프에 참여해도, 총선에 출마해도 교육공무원법상 교수직은 보장된다. 폴리페서가 문제될 때마다 법 개정 움직임이 일지만, 교수 출신 의원 등의 저지로 통과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이러니 정치에 뛰어들어도 리스크는 거의 없다. 잘되면 대박이다. 너도나도 유혹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 중 교수 출신 13명 가운데 장관 5명, 장관급 5명, 국회의원 1명이 나왔다. 이명박 정부 조각(組閣)에서도 장관 내정자와 대통령실장, 수석비서관 24명 가운데 교수 출신이 절반(12명)이나 됐다.
선진국에선 공직에 진출하면 교수직 사임이 상식이다. 공직에 나가도 국정 경험이 없는 교수가 일약 장관에 발탁되는 일은 드물다.
밤늦게 불 밝히는 교수 의욕 꺾어
왜 한국만 장관으로 직행이 가능할까.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보좌했던 한 의원의 얘기. “대선캠프에선 하루라도 일찍 뛰어드는 게 나중엔 큰 차이가 난다. (대선) 후보의 눈으로 볼 때 자신의 당선 가능성을 반신반의하는 어려웠던 시절부터 도와준 인사에게 상대적으로 큰 보상을 할 수밖에 없다.” 일찍부터 후보를 도운 사람 가운데 교수가 많다는 것. 뒤집어 생각해보면 교수니까 이런 ‘조기 베팅’이 가능하다.
폴리페서의 만연은 오늘도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는 교수들의 연구 의욕을 꺾는다. 나아가 나라 발전의 기초체력인 아카데미즘의 붕괴로 이어진다. 이대로 놔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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