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부짖는 소 돼지와 뒤엉켜 있는 축산농민과 직원들을 생각하면 어떻게 병원에 드러누워 있겠습니까.” 경북 영천시 직원 장모 씨(51)는 6일 찢어진 오른쪽 눈이 퉁퉁 부은 채 매몰 작업을 하다 이렇게 말했다. 그는 4일 영천시 임고면에서 구제역 도살처분 작업 중 미끄러져 눈 주위가 찢어졌으나 구급차를 불러 응급치료만 한 뒤 곧바로 돌아왔다. 다른 40대 직원은 몸부림치던 돼지와 함께 매몰 구덩이에 떨어진 순간 다른 돼지가 덮치는 바람에 다리를 다쳤다.
전국을 덮친 구제역 쓰나미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축산농민들과 함께 눈물을 삼키며 방역과 매몰에 나서면서 공무원들도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다. 나라에 재난이 생기면 공직자가 앞장서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지만 한 달 넘게 격무가 지속되면서 파김치가 됐다. 실제 경북 안동시의 40대 직원이 이동통제초소 근무 중 숨진 데 이어 경북 영양군 30대 직원이 방역 중 작업차량에 깔려 사망했다. 경기 파주시의 한 공무원은 작업 중 손가락이 잘렸다. 눈이 많이 내렸던 4일 밤에는 경북 고령군의 40대 여직원이 집에 가지 못하고 초소에서 근무하다 쓰러져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 구제역대책특위 간사인 김영우 의원(경기 포천-연천)이 도살처분에 관여한 포천·연천지역 공무원 211명을 대상으로 3∼6일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14.2%(30명)가 다치거나 질병에 걸렸다. 71.7%(150명)는 수면장애 등 후유증을 겪고 있다.
일부 대도시를 제외한 지자체 공무원들은 신묘년을 방역초소나 매몰작업장에서 맞았다. 그래도 불평 대신 구제역 조기 종식이 소망이다. 경기 양평군의 한 직원은 “정말 힘들지만 애지중지 키운 소 돼지를 파묻어야 하는 농민 심정보다 더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구제역이 시작된 안동시의 경우 전체 공무원 1500여 명이 모두 죄인이 된 심정이다. 영하의 날씨가 추운 게 아니라 ‘안동 사람’ ‘안동 특산물’ ‘안동 하회마을’도 구제역 탓에 썰렁해지는 분위기가 더 춥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한 달째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다. 매몰 현장에 갈 때마다 축산농민과 공무원들이 함께 울면서 소 돼지를 매몰 구덩이에 던져 넣는 모습에 울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안동의 소 돼지 18만 마리 가운데 80%가 땅속으로 사라졌다. 이번 구제역이 엄청난 피해를 낳고 있지만 ‘공선사후(公先私後)’의 정신으로 구제역 방어에 앞장서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멀리서나마 박수라도 보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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