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취임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저축은행 부실 문제에 대해 “기본 방향은 이미 결심이 서 있다”고 밝혔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도 “어떤 식으로든 빨리 하겠다”고 거들었다. 저축은행 부실 처리는 일도 아니라는 듯한 눈치다.
부실 저축은행이라면 고개를 가로젓던 은행도 180도 바뀌었다.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금융권 전체가 나서서 저축은행을 빨리 안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앞장섰고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민병덕 국민은행장, 류시열 신한금융지주 회장도 약속이나 한 듯 저축은행 인수 의사를 비쳤다. 4대 금융지주회사들이 일제히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모습은 김석동 위원장이 취임사에서 “금융위의 존재감만으로 시장질서와 기강이 바로 설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 그대로다.
얕보다간 큰코다칠 저축은행
‘해결사’로 통하는 김 위원장이 장담하는 대로 저축은행 부실은 일단 시중은행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해결될 것 같다. 시장의 차가운 반응이 문제였지만 “저축은행 인수가 호재가 될 수도 있다”는 김 위원장의 발언에 시장의 반응도 달라졌다. 하지만 금융위원장이 직접 호재 운운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태도다. 주식 투자자들은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은행들이 손해 보지 않도록 지원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저축은행 부실 처리는 더 미룰 수 없는 화급한 일이다. 관치를 동원하지 않을 수 없다는 데에도 공감이 간다. 전임자들이 미뤘던 일을 욕을 먹더라도 끝내겠다는 의지는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금융지주회사에 저축은행 부실을 강제로 떠넘기는 방식은 당장의 득보다는 장기적인 손실이 더 크고 상처가 깊을 수 있다.
은행에 인수시키는 첫 번째 이유는 공적자금을 투입했다는 지적을 받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은행에는 이미 12조 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우리은행이 저축은행을 인수한다면 사실상 공적자금이 우회 투입되는 격이다. 공적자금으로 회수되어야 할 돈이 저축은행으로 가는 결과다. 공적자금 투입이 없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저축은행 부실이 말끔히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은행도 부동산 부실 대출이 우려되는 처지에 저축은행 부실을 떠안는 것은 위험이 크다. 과거 저축은행 부실 처리를 위해 은행이나 더 큰 저축은행에 인수시켰지만 부실을 더 키웠을 뿐이다. 차라리 공적자금을 넣고 문을 닫은 뒤 부실책임을 묻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스페인에서는 부실을 감추고 미룬 저축은행이 재정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개별 저축은행의 드러난 부실이 작다고 얕보다간 큰 코다칠 수 있다. 감춰진 잠재부실이 많기 때문이다.
도이치증권은 왜 처리 못하나
저축은행을 선뜻 인수하겠다고 나선 금융지주회사 경영자들도 문제가 많다. 주주와 고객을 먼저 생각해야 할 최고경영자(CEO)가 관료의 눈치를 먼저 살피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부실 금융기관을 지원하라는 요청에 반대했다가 괘씸죄를 뒤집어쓰고 문책당한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겠지만 금융 선진화는 더 멀어지는 듯하다.
저축은행 부실 처리는 본격화될 관치의 신호탄이다. 외국자본의 투자도 없고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저축은행이 만만한 상대로 선택됐을 뿐이다. 다음 상대는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우리은행 같은 곳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금융가에 나돈다. 민영화를 하되 정부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은행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금융 관료들이 금융 안정을 위해 금융회사에 관치를 휘둘러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금융감독권은 적절하게 행사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금융 관료들은 외국자본에는 무력한 것 같다. 작년 11월 우리 증시를 교란시켰던 도이치증권에 대해서는 여태 아무런 조사 결과도, 조치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젠 우물 안 개구리식 관치금융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