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정동기 감사원장’에 반대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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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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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퇴계 이율곡이 조선시대 감사원인 사헌부의 대관(사헌부 관원 총칭)이었다는 걸 나는 처음 알았다. 감사원이 펴낸 ‘감사 60년사’를 보고나서다.

“대관 임명은 다른 관직보다 엄격했다. 군주의 잘못을 기탄없이 간쟁하고 장상(將相)들의 그릇됨을 과감히 규탄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감사원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대관의 생명은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직성이었다. 세종이 대사헌에 임명한 이발(李潑)을 대관들이 부적격하다며 거부해 결국 왕이 물러섰을 정도다.

헌정사상 두번째 직속 비서 출신

예나 지금이나 감사원에는 국민이 기대하는 바가 있다. 정부에 대한 신뢰가 암만 바닥이래도 감사원만은 우리가 헌법을 통해 부여한 국정감시자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고 싶어 한다. 전두환 대통령도 이한기 서울대 법대학장을 당대 첫 감사원장으로 임명해 나름대로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대통령비서가 감사원장이 된 경우는 1976년 유신독재시절 임명돼 박정희 대통령 시해까지 겪은 신두영 청와대 사정담당 특별보좌관이 유일하다.

정동기 전 민정수석의 감사원장 내정은 그래서 더 불길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동의 요청사유서에서 밝힌 대로 “감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지킬 적임자”라고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정동기 감사원장’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다. 오죽하면 비서를, 그것도 하필 정 씨처럼 사정을 맡았던 사람을 감사원장 시킨 대통령이 박정희밖에 없었을까.

청와대 관계자는 “모의청문회에서 수석비서관 출신을 감사원장으로 보내는 데 대해선 아무 논의가 없었다”고 했다. 감사원장이 어떤 자리인지, 자유민주 정부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이 무엇인지 개념을 가진 사람이 청와대 안에 없다면 비극이다. 국민을 대신한 국정감사가 아니라 대통령을 돕기 위한 국정단속을 할 의도라고는 정말이지 믿고 싶지 않다.

둘째 능력 문제다. 실용을 앞세우는 정부이니 참모 출신이라는 전력이 아니라 능력만 본 인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 씨는 2009년 전형적 ‘스폰서 검사’였던 천성관 검찰총장 내정자 인사검증 파동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민정수석이 청문회에서 금방 드러날 내용조차 파악 못했으면 무능이고, 알고도 강행했다면 판단력에 문제가 있다. “안 됩니다”라는 말도 못한 인물이면 강직성도 없다. 아예 천성관 인선과 검증에서 배제됐다면 바지저고리였다는 얘기다.

더구나 정 씨가 민정수석이었던 때는 ‘민간인 사찰’이 있었던 시기다. 이에 대해 잘 아는 핵심인사는 “청와대 하명으로 정권에 문제를 일으킬지 모르는 사람들을 사찰하는 건 37년 된 관행”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현 정부에서처럼 특정지역 인맥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같은 공조직에 똬리를 틀고 탐정놀이 하듯 사찰해온 건 어처구니없다. 호가호위(狐假虎威) 세력의 ‘권력형 비리’ 냄새가 풀풀 난다. 민정수석으로서 정 씨는 대체 뭘 하고 있었기에 일이 그 지경이 됐단 말인가.

‘도곡동땅’ 변호로펌서 갓끈매다

셋째 “철저한 자기관리를 통해 높은 도덕성과 청렴성을 유지해왔다”는 청문회 요청서 내용도 믿기 어렵다. 정 씨에게 7억 원의 보수를 준 로펌 ‘바른’은 2007년 그가 대검차장일 때 이상은 씨(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의 형) 편에서 도곡동 땅 의혹사건 소송을 맡았던 곳이다. 그해 8월 14일 그는 “도곡동 땅이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땅이라고 볼 증거도 없다”고 확인시켜줌으로써 ‘바른’ 손을 들어줬다. 결과적으로 8월 19일 대선 후보 경선투표에 영향을 미친 대검차장이 11월 20일 퇴임한 지 엿새 만인 26일 바로 그 로펌의 대표변호사로 옮겼다. 이것도 철저한 자기관리라 할 수 있는지 보통사람의 가치관으론 납득할 수 없다. 이 정부가 인사 때마다 국민적 공분(公憤)을 일으키고도 같은 인사 행태를 반복하는 건 더욱 절망스럽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기는지는 중요하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 최근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비해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실적이 좋은 것도 아닌데 좋게 기억되는 건 미국인들에게 ‘미국은 대단한 나라’라는 희망을 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좋은 기억을 갖기 힘든 것도 희망은커녕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라는 부정적 인식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번 같은 공정하지 못한 인사로 이 대통령이 ‘우리나라 권력은 어쩔 수없다’는 국민적 낭패감을 남긴다면 대통령도 국민도 불행이다.

정 전 수석은 천성관 사태 때 모든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했다. 충성심과 책임감에 따른 선택이었다고 믿고 싶다. 지금이 그 덕목을 다시 한번 발휘할 기회다. 그리하여 임명권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국민이 이 정부에 희망을 잃지 않게 해주기 바란다. 전관예우 관행이 당장 없어질리 없으니 어딜 가든 억대 연봉도 따라오지 않겠는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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