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박희창]시청률 저조하면 조기종방… 드라마는 ‘파리 목숨’인가

  • 동아닷컴
  • 입력 2011년 1월 11일 20시 00분


“63회까지 써 놨어요. 그런데 이야기를 마무리해 달라는 말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번 달 말에 드라마를 ‘자른다’는 통보만 받았어요.”

MBC 일일드라마 ‘폭풍의 연인’이 시청률 부진을 이유로 조기에 끝난다. 이 드라마의 나연숙 작가(67)는 “24회까지 방송된 지난해 말 드라마국장과 담당 CP가 70회까지 방송하겠다는 통보를 했고, 일주일 뒤에 다시 찾아와 1월 말까지만 방송하겠다는 말을 했다”며 “6개월 예정의 드라마를 이제 겨우 한 달 남짓 방송된 상황에서 종방을 결정하는 것은 ‘방송사고’ 아니냐”고 말했다. MBC는 ‘폭풍의 연인’ 후속으로 아침드라마로 준비하던 ‘남자를 믿었네’를 방송할 계획이다.

나 작가는 “간부들로부터 사장의 지시사항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시청률만 잘 나오면 불륜과 출생의 비밀 등이 단골로 나오는 저질 드라마도 보호받고 있다. MBC가 공영방송이라면서 단지 낮은 시청률을 이유로 드라마를 무 자르듯 하는 것은 제작진과 출연자들뿐만 아니라 시청자에게도 ‘예의’가 아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 드라마에 출연 중인 배우들도 조기 종방이 논의 중이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공식적인 통보는 받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17일 첫 방송된 이 드라마는 ‘탈(脫)저질 드라마’를 표방하며 연령에 따른 시청불가 표시 없이 3대가 한자리에서 함께 볼 수 있는 드라마로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MBC의 결정에 따라 총 120회 방송 예정이었던 이 드라마는 예정된 분량의 절반이 방송되기도 전에 최후를 맞게 됐다.

MBC 관계자는 “맞편성된 KBS ‘웃어라 동해야’가 30%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회사 차원에서 어떤 방법을 써도 안 될 것 같으니 빨리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웃어라…’는 6일 자체 최고 시청률인 33.7%를 기록한 반면 ‘폭풍의 연인’은 10일 35회에서 5.9%의 시청률을 보였다.

MBC는 2009년에도 주말드라마 ‘탐나는도다’를 조기에 끝낸 바 있다. 당시 MBC는 해당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5% 안팎에서 맴돌자 20부작인 드라마를 16회로 조기 종방했다. 시청자들은 조기 종방 반대 온라인 서명을 받고 서울지하철 2호선 강변역 등에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지난해 K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배우 문근영 씨는 수상 소감에서 “단순히 시청률로 평가 받는 현실 속에서,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열악하다. 마음껏 만들 수 있도록 방송사와 제작사의 개선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해에도 방송사의 시청률 지상주의는 이어지고 있다.

박희창 문화부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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