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권순활]이건희 회장의 일본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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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2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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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는 생전에 연말연시를 일본에서 자주 보냈다. 그는 일본 주요 언론의 신년 특집을 보거나 산업계 학계 언론계 인사 면담을 통해 세계와 일본의 흐름을 읽고 경영 구상을 가다듬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여서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관심이 높고 참고할 만한 정보가 많다는 말도 했다. 삼성과 한국경제의 위상을 끌어올린 반도체 사업 진출 결단도 ‘도쿄 구상’의 산물이었다.

▷‘이병철 시대’에 이어 1987년부터 삼성을 이끈 이건희 회장도 일본을 잘 아는 기업인이다. 와세다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틈나는 대로 일본에 가 기업 현장을 찾거나 각계 인사들을 만난다. 지난해 9월 모교인 와세다대에서 받은 명예법학박사 학위는 그가 지금까지 수락한 유일한 외국 대학 명예박사 학위이다.

▷최근 몇 년간 일본에서는 ‘삼성 다시 보기’ 열풍이 불고 있지만 이 회장의 인식은 냉정하다. 그는 그제 “겉모양은 삼성전자가 일본 기업을 앞서지만 속은 아직까지 (일본을) 따라가려면 많은 시간과 연구가 필요하다”면서 “일본에서 더 배울 게 많다. 한참 배워야죠”라고 말했다. 경영 복귀 직후인 지난해 4월에도 “삼성이 최근 몇 년간 좋아지고 있지만 일본 기업에는 더 배워야 할 게 있다”며 삼성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잊지 않았다. 이 회장의 일본관(觀)과 삼성관은 지금까지의 성과에 안주하면 언제든지 다시 추락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기업이든 국가든 지나친 자존과 자학은 모두 금물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섣부른 ‘샴페인 터뜨리기’보다는 적절한 긴장감과 위기감을 지니는 편이 건강하다.

▷1980년대까지 승승장구하던 ‘일본의 힘’이 다소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경제성장 둔화와 선심성 정책에 따른 세계 최악의 재정적자, 걸핏하면 정권이 바뀌는 정치적 불안정, 의사 결정이 늦은 비효율도 눈에 띈다. 하지만 일본의 연구개발(R&D) 수준과 제조업의 기술 및 품질 경쟁력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내공과 깊이도 전반적으로 한국보다는 한 수 위다. 일본의 약점은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겠지만 우리가 벤치마킹해야 할 일본의 강점은 여전히 많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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