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장 같은 주요 직책의 후보자를 고를 때는 그동안 인사청문 과정에서 요구됐던 기준을 충족해야 함은 기본이고 정무적 판단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청와대는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검증을 소홀히 했을 뿐 아니라 정무적 판단에도 실패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는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를 계기로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인사기획관을 신설했으나 유명무실한 상태로 놔두다가 1년 만에 이마저도 없애 버렸다. 일정 부분 그 역할을 대신 해 줄 수 있는 정무수석이나 홍보수석도 청와대의 인사 논의에서 배제돼 있다고 한다. 임 실장이 사실상 인사수석 역할까지 겸하고 있는 ‘단독 검증 시스템’이어서 보다 객관적인 위치에서 후보자를 바라보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나라당 최고위원회가 ‘정 후보자의 부적격’을 선언한 데 대해 홍상표 홍보수석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적절하지 못했다. 불과 이틀이 못돼 물러날 사람을 변호하기 위해 당청(黨靑) 갈등을 드러낸 꼴이 되고 말았다.
정 후보자는 어제 사퇴의 변(辯)을 통해 절절히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 후보자의 사퇴 회견문을 읽어보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고 홍 수석은 전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나라당 지도부가 정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고 있는데도 “거취는 본인 스스로 결정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후보자 인선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본인과 대통령, 청와대 참모들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인사에 관한 인식에서 국민과의 괴리가 너무 크다.
지난해 말에는 안보 위기와 구제역 파동, ‘공정한 사회’에 걸맞지 않은 공직자들의 일탈까지 겹쳐 민심이 흉흉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자신의 참모 출신으로 법무법인에서 7개월에 7억 원의 보수를 받은 사람을 감사원장 후보자로 내정하는 무리수를 뒀다. 거듭되는 청와대의 인사 실패로 민심 이반은 더 심해지고 있다. 당청 갈등과 대통령의 레임덕(권력 누수)에 대한 우려도 자초했다. 한두 번 더 비슷한 실패가 나온다면 현 정부는 심각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정 후보자의 낙마를 계기로 청와대의 고장 난 인사시스템부터 확실하게 고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