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나랏빚 한도’ 정해 재정 운용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8일 03시 00분


빚더미에 올라선 미국 정부가 국가부도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의회에 보낸 편지에서 “3월 말, 늦어도 5월 16일이면 국가부채 한도가 차게 된다”며 “의회가 한도를 증액해주지 않으면 미 정부가 파산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고 밝혔다. 미국은 국가부채 규모에 상한선을 두어 총량을 법으로 관리한다. 미 국가부채는 지난해 말 14조252억 달러로 의회가 정한 한도 14조3000억 달러에 육박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과 경제회생에 큰돈이 들어간 결과다.

미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부채 한도 증액은 없다”면서 “정부 지출부터 확 깎으라”고 맞서고 있다. 미국 국민은 1인당 4만5300달러(약 506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미 방송사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1%는 정부의 채무한도 확대에 반대했다. 국가부채를 줄이려면 증세(增稅)를 하거나 복지를 줄여야 하는데 미 국민이 선거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관심거리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34.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 53.8%(2009년)보다 낮다. 하지만 국가부채의 산정 기준을 다른 나라들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 기획재정부는 이번에 국가부채의 기준을 새로 정하면서 실질적인 나랏빚이 얼마나 되는지를 국민이 쉽게 알 수 있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국가부채는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17.6% 증가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이후 확장적 재정운용을 한 탓이다.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와 북한 변수로 갑작스러운 재정 수요가 생겨 부채가 급증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국제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한국 고령화 보고서’에서 한국의 고령화 관련 지출이 급증함에 따라 정부의 빚도 급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부채를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게 관리하고 국민에게 실상을 정확하게 알려야만 우리도 미국이나 남유럽 국가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다. 국가부채의 한도를 법으로 정해 관리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확정채무뿐 아니라 전체 공공기관의 채무와 우발채무까지 공표하고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 재정부담을 수반하는 법률안의 제정 및 개정 때 재원조달 방안을 마련하고 추경 편성과 세계잉여금 처리를 제한하는 조치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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