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더미에 올라선 미국 정부가 국가부도를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의회에 보낸 편지에서 “3월 말, 늦어도 5월 16일이면 국가부채 한도가 차게 된다”며 “의회가 한도를 증액해주지 않으면 미 정부가 파산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고 밝혔다. 미국은 국가부채 규모에 상한선을 두어 총량을 법으로 관리한다. 미 국가부채는 지난해 말 14조252억 달러로 의회가 정한 한도 14조3000억 달러에 육박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과 경제회생에 큰돈이 들어간 결과다.
미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부채 한도 증액은 없다”면서 “정부 지출부터 확 깎으라”고 맞서고 있다. 미국 국민은 1인당 4만5300달러(약 506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미 방송사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1%는 정부의 채무한도 확대에 반대했다. 국가부채를 줄이려면 증세(增稅)를 하거나 복지를 줄여야 하는데 미 국민이 선거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지도 관심거리다.
지난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34.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치 53.8%(2009년)보다 낮다. 하지만 국가부채의 산정 기준을 다른 나라들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 기획재정부는 이번에 국가부채의 기준을 새로 정하면서 실질적인 나랏빚이 얼마나 되는지를 국민이 쉽게 알 수 있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국가부채는 1997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17.6% 증가했다. 외환위기와 금융위기 이후 확장적 재정운용을 한 탓이다.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와 북한 변수로 갑작스러운 재정 수요가 생겨 부채가 급증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국제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한국 고령화 보고서’에서 한국의 고령화 관련 지출이 급증함에 따라 정부의 빚도 급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가부채를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게 관리하고 국민에게 실상을 정확하게 알려야만 우리도 미국이나 남유럽 국가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다. 국가부채의 한도를 법으로 정해 관리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확정채무뿐 아니라 전체 공공기관의 채무와 우발채무까지 공표하고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 재정부담을 수반하는 법률안의 제정 및 개정 때 재원조달 방안을 마련하고 추경 편성과 세계잉여금 처리를 제한하는 조치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