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한승주]美-中 공동성명, 문안보다 이행이 관건

  • Array
  • 입력 2011년 1월 21일 03시 00분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후진타오 주석이 세계의 큰 관심 속에 미국을 국빈 방문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혹자는 1979년 덩샤오핑의 방미 이래 가장 중요한 방문이라고까지 한다. 14년 전 장쩌민 주석이 미국을 국빈 방문했을 때와 이번 방문에는 격세지감이 있다. 오늘날 중국은 개혁개방 30여 년 만에 경제적(국내총생산·GDP)으로 일본을 추월하여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자 미국과 주요 2개국(G2)을 구성하면서 세계경제를 함께 이끌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과 미국은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 관계에 있다. 미국은 중국의 최대 수출 대상국이며 중국은 미국 상품의 주요 수입국이다. 중국은 또한 미국의 최대 채권 국가이다.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과 협력 관계에 있는 한편 외교안보적 측면에서는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하겠다. 특히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은 상호간의 안보 및 군사정책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장군멍군식의 군비 경쟁에 임하고 있다.

이렇듯 안보 분야에서의 경쟁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는 미중 양국이 갈등보다는 협력의 필요성을 더 많이 느끼고 있다. 양국은 다 같이 한반도에서 전란이 확대(escalate)된다든가, 불안정한 상황이 야기된다든가,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와 운반수단이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공동 목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가, 또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의견과 이해의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 문제는 일촉즉발까지 갈 뻔했던 최근의 상황과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등으로 인해 미중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등장하였다.

정상회담의 속성상 양국 정상이 만났을 때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이러한 정책 목표의 원칙적인 확인 이상의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논의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중국이 추진하고 권유하는 6자회담의 재개와 관련해서 미국은 한미의 전제조건(도발행위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 표명, 남북 대화 선행 등)을 강조하고 중국은 그동안 자국이 북한의 자제와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취한 조치들을 설명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중국은 계속 북한을 설득할 것이며 미국은 한국 등과 지속적으로 협의할 것을 다짐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동성명에서 양국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 유지와 비핵화에 대해 기대했던 것보다도 강력한 의지와 적극적인 합의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이 이 문제들에 있어서 지금까지의 태도보다 한 발 더 나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인 동시에 우리가 최대한 활용해야 할 기회가 된다고 하겠다.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그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북한 핵을 동결시키고 관리하는 등 그나마 상황을 진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6자회담이라는 데는 큰 이의가 없을 것이다. 또 6자회담이 열리고 있는 동안 북한이 도발행위를 자행할 가능성은 적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6자회담을 재개함으로써 북한의 과거 도발행위 등에 면죄부를 준다거나, 현재도 진행하고 있는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등 핵 활동을 기정사실화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미중 정상회담이 이러한 어렵고도 때로는 이율배반적인 문제들을 풀어 나가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발표된 문안 자체보다는 양국이 현 상황의 심각성에 대한 공동의 인식하에 후속 조치를 어떻게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핵 없는 세상을 제안한 오바마 대통령과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회담의 진전을 외교적 성과로 보는 후 주석의 역사적 회동이 요동치는 동북아의 새 질서를 향한 의미 있는 계기로 판명될 것인지 한국민과 세계가 모두 주목하고 있다.

한승주 고려대 명예교수·전 외무부 장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