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 추아. 최근 미국은 이 두 사람의 중국인으로 떠들썩했다. 후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고 추아는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에이미 추아를 말한다.
후는 마침내 중국이 미국과 대등한 동방대국에 등극했음을 과시해 미국의 혼을 빼놨다. 추아는 ‘왜 중국 어머니들은 우월한가’라는 도발적 제목으로 자신의 자녀교육법을 월스트리트저널에 실어 미국인의 비위를 긁었다.
안 그래도 미국은 자국의 쇠락과 중국의 굴기(굴起)에 뼈가 저리는 처지다. 일본계 3세 미국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21세기 첫
글로벌 위기에서 미국 민주주의는 무능과 부패를 노출했지만 중국은 독재자본주의(authoritarian capitalism)의
우월성을 입증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다 ‘고발’했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앞으로의 세계는 암울하다. 우리처럼 작은 나라는
조공이라도 바쳐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될 판이다.
후가 오늘의 중국을 상징한다면 추아는 내일의 중국을
상징한다. 추아 같은 엄마들이 길러낸 엘리트가 결국 중국을 이끌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가 쓴 ‘호랑이 엄마의 전투찬가’는
2주 전 출간 즉시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자녀 성적이 나의 성공’이라고 믿는 중국 엄마들은 자녀가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선 뭐든 한다는 내용이다. 아이가 뭘 하든 “잘한다”고 치켜세워온 미국 엄마들은 경악했다. 아동학대가
아니냐는 비판부터 중국이 무섭다는 전율까지, 유력 신문은 물론이고 인터넷에서도 난리가 났다.
한국 부모 敎育熱 짓밟는 정부
교육열로 치면 추아 정도의 엄마는 얘깃거리도 안 되는 곳이 우리나라다. 예일대 교수쯤 되는 한국 엄마가 영어로 책을 안 내서 그렇지, 우리 엄마들이 자녀교육에 쏟는 열정과 희생은 중국에 지지 않는다.
이 엄청난 교육에너지가 세계 모든 엄마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중요하다. 자녀사랑이야 공통된 본능이겠지만 교육열은 그렇지
않다. 브라질에선 저소득층 엄마들한테 아이들 학교 보낸다는 조건으로 정부가 현금 지원을 하는데도 학교 안 보내고 돈 벌어오라고
등 떠미는 집이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열을 ‘망국적 치맛바람’으로 폄훼해온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미국에선 미중 경쟁이 군사력 아닌 교실에서 결판난다며 교육경쟁력 높이기에 박차를 가하는 판국이다. 우리나라가 중국을
뛰어넘을 수 있는 유일한 방도가 바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로 글로벌 인재를 키우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는 문명권 중심부 중국에 맞서는 최상의 방법이 학구열에 있다고 봤다. “근대 평등사회를 이루는 과정에서 중국은
상위신분을 철폐해 하향평준화가 된 반면 우리는 누구나 상위신분이 되는 상향평준화를 택했다”고 조동일 서울대 명예교수는 분석했다.
타고난 처지에 머물지 않고 잘살아 보겠다고 공부에 분투했던 역동성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이런 한민족이 두려웠던 일본은 우리의 학구열과 교육열 낮추기를 식민통치의 주요 시책으로 삼았다. 이 식민통치의 유산을 지금 이명박 정부가 이어가고 있다.
출범 때만 해도 ‘글로벌 인재양성’이 핵심이었던 교육정책은 2008년 촛불시위에 놀라 ‘사교육 때려잡기’로 돌변했다. 사교육비에
허리 휘는 서민을 위해서라지만 가계소비지출에서 의식주를 뺀 교육비 지출 비중은 1965년 24.5%에서 2008년 22.2%로
외려 줄었다. 가장 많이 늘어난 건 교통통신비인데도 정부는 교육열이 나라를 망치기나 하는 양 엉뚱한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더구나 글로벌 위기 이후 선진국의 실력주의(meritocracy)는 더 확대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불평등’을 특집으로
다룬 최근호에서 “정부는 교육투자에 힘쓰되, 잘하는 애들을 막지 말고 못하는 애들을 끌어올려 계층이동을 북돋는 게 최선의
정책”이라고 했다. ‘공부 잘 가르치기를 회피하는 교원노조가 빈곤층의 적(敵)’이라는 대목은 한국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자유 없는 중국보다 옥죄어서야
중
국이 잘나가는 듯해도 정치적 사상적 자유가 없는 나라에선 구글 같은 이노베이션이 나올 수 없다고 미국은 자위하고 있다. 그래도
중국엔 국제학교와 사립학교가 많고 하버드대를 비롯한 세계 일류대학 분교가 진출해 글로벌 인재를 키운다. 정치적 사상적 자유가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 정부가 중국만도 못하고, 노무현 시대보다 심한 교육관치(官治)를 펴는 것은 후대에 죄를 짓는 일이다.
우리 국민이 10년 후에 먹고살 것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대통령이라면 국제고 외국어고 같은 인재학교와 명문대학의 엘리트 교육을
옥죄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부인하고 싶대도 장차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글로벌 인재는 여기서 나온다. 땅덩어리도, 자원도,
이성(理性)도 빈약한 우리나라가 중국에 조공 바치지 않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정부가 막진 말기 바란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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