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책사업 유치전쟁 ‘합리적 조정’ 할 수 없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5일 03시 00분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공사는 10조 원 정도의 예산이 투입될 대형 국책사업이다. 후보지로 부산 가덕도, 경남 밀양 등이 떠오르면서 지자체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신공항 유치를 놓고 부산과 대구·경남·경북이 대결하는 양상으로 치닫자 정부는 용역 결과 발표 일정을 세 차례나 연기했다. 해당 지역의 상경 시위가 줄을 잇고 있고 지역 정치권 인사들도 “물러설 수 없는 기(氣)싸움”이 됐다고 개탄할 정도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어제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책사업 유치운동이 도(度)를 넘었다”며 “동남권 신공항 유치와 관련해 이달 말로 예정된 부산과 대구·경북지역 유치 결의대회는 중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7년간 3조5000억 원이 들어갈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유치하기 위해 전국 지자체들은 한 치의 양보 없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충청권 유치를 공약했으나 정부는 세종시 수정안이 무산되면서 입지 선정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다. 충청권에서도 대전 천안 등 4곳이 힘겨루기를 한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정부과천청사 이전 용지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과학벨트를 충청권으로 보내는 것을 지지하지만 같은 당 소속 강운태 광주시장은 “상황이 바뀌었다”며 호남권 유치 운동을 시작했다. 야권에선 당내 분열을 덮기 위해 “지금 형님(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의원)이 끼어든 형국”이라고 연막전술을 편다.

대형 국책사업을 유치하면 지역 발전을 가져오고 지역 경제의 숨통을 틔울 수 있어 각 지역이 매달리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국가 전체의 미래가 달린 국책사업에 지역 논리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잘못이다. 과학벨트의 선정에서 정작 과학기술인들의 목소리는 배제되고 있다.

상황은 다르지만 ‘기피시설’이었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이 방폐장의 필요성이 공론화된 지 21년 만인 2005년 경북 경주로 확정된 과정을 되새겨볼 만하다. 기피시설 유치에 따른 인센티브를 제공하되 주민투표 찬성률이 높은 지역을 선정한다는 기준에 공모 신청지역이 모두 승복했다. 유치경쟁 사업에서도 지역 감정에 편승한 정치공학적 접근을 배제하고 다수가 승복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과학벨트의 입지가 정치 논리와 지역이기주의에 따라 선정되면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그르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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