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연수를 떠나기 전 주위 사람들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히라가나도 모르는 6학년 아들을 일본 소학교에 편입시킬 때까지는 그랬다. 도쿄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 부근의 한 구립 소학교에는 6학년이 1개 반뿐이었다. 그 속에 한국인은 아들이 유일했다.
3개월쯤 흘렀을까. 아들의 말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매사에 삐딱한 반응을 보였다. 우연히 집 앞 가게 주인이 말했다. “소학교 녀석들이 길거리에서 당신 아들을 괴롭히던데요. 혼내줄까 하다가 나중에 더 심해질 것 같아 그만뒀소.”
이지메(집단 따돌림)였다. 일본 TV에선 한 소학교 여학생이 이지메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속에서 부아가 끓었다. 하지만 아들은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일본어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다”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담임선생도 “아이들과 친해지는 과정이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
아들과 일본 아이들을 이어준 매개체는 ‘체육’이었다. 방과 후 아이들은 인조잔디 구장에서 축구를 하며 놀았다. 왕따였던 아들은 이들과 점점 하나가 됐다. 주말이면 동네 클럽 야구팀에서 방망이를 휘둘렀다. 만년 후보선수였지만 유니폼을 입고 훈련을 하는 얼굴에는 미소가 넘쳤다.
일본의 소학교는 체육시간이 많았다. 아이들은 교사와 함께 공을 차며 달렸다. 여름이면 야외수영장에서 체육 실습을 했다. 수업이 끝나면 ‘뭘 하며 놀까’를 고민했다. 공부는 고등학교에서 하면 되고 소학교에선 건강과 창의력이 우선이라는 게 이 학교의 소신이었다. 지난해 12월 귀국을 앞둔 마지막 수업 날, 아들은 펑펑 울었다. 같은 반 친구들은 이별을 아쉬워하는 글을 모아 아들에게 선물했다. 아들은 “처음엔 이지메를 당하는 게 힘들었지만 이젠 너희와 친구가 돼 행복하다. 나를 잊지 마라”고 화답했다.
돌이켜보니 한국 초등학교는 체육시간이 거의 없었다. 방과 후 운동장은 텅 비었다. 체육 과목은 국영수에 밀린 지 오래다. 운동장에 가끔 보이는 아이들은 오히려 왕따 취급을 받았다. 학원을 다닐 형편이 아닌 아이들과는 상대하지 않는다는 학부모도 있었다. 자유롭게 놀게 하는 일본과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준비에 찌든 한국 아이들은 극과 극의 대조를 보였다.
귀국 전날 아들의 같은 반 학부모들과 식사를 했다. 한 학부모는 “한국 아이들은 외국어와 수학까지 잘해 부럽다”며 “일본 교육계는 너무 공부를 안 시켜 걱정”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교육 수준이 낮아져 일본의 미래가 어둡다고도 했다.
한국 초등학교 아이들의 현실은 혹독하게 느껴졌다. 겨울 방학은 보충수업을 하는 시간이 됐다. 매일 학원을 다니며 영어 수학 공부를 하느라 파김치가 된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도 이런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교육의 목표는 머리와 손과 가슴, 지식과 기술과 도덕의 세 가지가 원만하게 조화된 전인(全人)의 형성에 있다’는 스위스의 교육학자 요한 하인리히 페스탈로치의 말이 생각났다. “어릴 때는 놀아야 한다”는 일본과 “영어 단어 한 개라도 더 외워야 산다”는 한국. 일본은 하향 평준화 교육이 문제라지만 체육 대신 입시에만 매달리는 우리의 교육 현실 역시 아이들의 꿈을 억누르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