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평인]자승과 길자연의 만남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9일 03시 00분


그제 조계종 총무원에서 자승 스님과 길자연 목사가 만났다. 두 사람은 각각 조계종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수장이다. 불교와 개신교 지도자의 회동은 가끔 있었지만 지금까지는 주로 조계종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간 만남이었다. 개신교는 진보 성향의 NCCK와 보수 성향의 한기총으로 양분된다. 소속 교단 수는 한기총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기총의 수장이 전체 종단모임과는 별도로 조계종 수장을 따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보수적 개신교인들이 서울 강남 봉은사에 들어가 대웅전 안팎에서 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며 우상 타파를 외치는 ‘봉은사 땅 밟기’ 동영상이 널리 퍼졌다. 개신교와 불교는 신앙적으로 경쟁관계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에티켓이 있다. ‘봉은사 땅 밟기’는 신앙 이전에 에티켓의 문제다. 성경의 사도행전을 보면 기독교 최초의 선교사 바울의 그리스 아테네 선교 장면이 나온다. 여러 신을 숭배하는 아테네인은 그것만으로도 불안해서 ‘알지 못하는 신’의 제단까지 세워놓았다. 바울의 선교는 우상 타파가 아니라 이 알지 못하는 신을 소개하겠다며 시작됐다. 바울의 선교에는 최소한의 에티켓이 있었던 것이다.

▷길 목사는 한기총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불교계의 ‘템플스테이’에 ‘처치스테이’로 맞불을 놓았다. 불교계는 올해 정부 예산에서 ‘템플스테이’ 지원이 깎였다고 화냈지만 개신교계는 정부 지원이 불교에만 간다고 불만이었다. 일찍부터 ‘템플스테이’를 하던 불교계로서는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갈등이 커지기 전에 두 수장이 만나 화해를 모색한 것은 잘된 일이다. 길 목사는 ‘처치스테이’ 예산을 자체 조달하기로 했다.

▷종교 간 갈등이 폭발할 때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 우리는 매일 국제뉴스에서 보고 있다. 한국은 동양종교와 서양종교가 비슷한 힘을 갖고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에서 드문 나라다. 이런 좋은 전통이 이어지려면 종교 지도자들이 신자에게 신앙을 심어주면서 그 신앙이 갈등의 소지가 되지 않도록 타 종교도 문화의 일부로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왕오천축국전 전시를 하고 있다.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은 절집의 유물일 뿐만 아니라 민족의 자산이다. 타 종교 신앙인들도 전시를 찾는 이유다. 7개 종단 지도자들이 함께 왕오천축국전을 관람하는 모임이 추진되고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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