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아스타나-알마티 겨울아시아경기에 출전하는 한국 선수단을 누구보다도 반갑게 맞은 이들이 있다. 1937년부터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로 건너온 카레이스키 고려인들이다. 한반도 인근의 연해주를 떠나온 지 74년. 2004년 노무현,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했지만 이처럼 많은 한국인이 찾은 건 처음이다. 질곡의 세월을 견디며 10만 카자흐스탄 한인 사회를 일군 이들의 감회가 남다른 이유다.
27일 고려인협회는 한인회와 함께 알마티 국제공항에서 환영 행사를 열었다.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 도모데도보 공항의 폭탄 테러 여파로 계획된 행사를 모두 진행하진 못했지만 감동적인 자리였다. 고려인협회 김게레만 부회장(58)은 “모든 고려인은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걸 잊지 않고 있다. 올해가 카자흐스탄에서 지정한 ‘한국문화의 해’라 더욱 뜻깊다”고 밝혔다.
한국대표팀의 소식은 다른 중앙아시아 국가의 고려인 사회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고려인 3세로 통역을 위해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박레나 씨(30)는 “할아버지의 나라에서 온 선수단을 만나보고 싶어 꼭 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려인들은 황무지 같던 카자흐스탄을 중앙아시아의 경제 문화 교육 중심지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37년 9월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약 17만 명의 이주민 중 추위와 홍역으로 60%가 사망했다. 하지만 남은 이들은 불굴의 의지로 새 삶을 개척했다. 황무지에 처음으로 논농사를 도입해 가장 많은 논을 가진 중앙아시아 국가로 만들었다. 이들은 카자흐스탄이 옛 소련에서 독립한 뒤 건설 전자 금융 업계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다. ‘부지런한 사람’ ‘남다른 교육열’ ‘민족 전용 극장을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소수민족’은 고려인 앞에 붙는 수식어다.
카자흐스탄 거리에는 고려인의 숨결이 살아 있었다. 알마티 중앙시장은 고려인 아주머니들이 만든 김치, 두부, 된장, 순대 냄새가 정겨웠다. 고려인 건축가 라지미르 씨가 설계한 ‘병기창’ ‘아라산(대리석 목욕탕)’ ‘공화국 회관’과 카자흐스탄 초대 헌법위원장의 이름을 딴 김유리 거리엔 고려인의 자부심이 깃들어 있다.
카자흐스탄에선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손님을 ‘하느님의 손님(Kudai Konak)’으로 맞이하는 전통이 있다. 한국대표팀이 이번 대회에서 선전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생겼다. ―카자흐스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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