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또 카드대란 조짐, 불씨를 잡으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31일 03시 00분


김대중 정부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내수 경기를 인위적으로 진작하는 정책을 펴면서 신용카드 규제를 완화했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카드 모집인을 늘리고 길거리 모집 같은 불법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무자격 미성년자에게도 카드를 발급했다. 폭리에 가까운 연체 수수료를 챙기기 위한 목적이 컸다. 당시 언론은 신용카드 남발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보도를 했으나 금융당국은 책임 미루기에 바빴다. 정부의 정책 실패와 카드회사들의 모럴 해저드로 초래된 2003년 카드대란의 충격은 쓰나미급이었다. 350만 명의 신용불량자가 양산되고 몇몇 신용카드회사가 현금서비스를 중단할 정도로 자금난에 빠졌다.

신용카드 회사들이 불법적인 카드 발급에 다시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어 제2의 카드대란이 발생할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카드 회사 모집인들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행사장 근처에 진을 치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며 부모의 선심을 산 뒤 카드 신청을 권유한다. 2003년 카드대란 당시 길거리 모집이 재현된 듯하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시행령은 카드 연회비의 10%를 넘는 사은품을 제공하거나 길거리에서 고객을 모집하는 행위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카드회사들은 시장 선점을 위해 법규 위반을 밥 먹듯 한다. 금융감독원이 단속을 벌이고 있다지만 의지가 약한 건지 불법 모집 행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경제활동인구 1명당 보유한 신용카드는 평균 4.59장으로 카드대란 직전인 2002년의 4.57장보다도 많다. 2002년 8만 명을 넘었던 신용카드 모집인은 2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가 지난해 다시 5만 명을 넘었다. 세계적인 금융완화 정책으로 저금리가 지속되자 자금 운용이 막힌 신용카드 회사들은 현금서비스 카드 대출을 늘리기 위해 회원 모집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신용카드가 남발되는 상황에서 금리가 크게 오르면 카드대란이 다시 벌어지기 쉽다.

올해 3월 국민은행에서 KB카드가 분사(分社)하고 하나금융그룹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경우 신용카드 업체의 영업 경쟁은 더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은 신용카드 회사들의 시장 선점(先占) 경쟁을 한가롭게 구경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작은 불씨도 간과하지 말고 선제적인 대응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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