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주성하]‘동토의 땅’ 북한엔 언제 재스민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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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31일 03시 00분


주성하 국제부 기자
주성하 국제부 기자
가난과 부자(父子) 세습에 반대해 국민들이 거리로 떨쳐나선 이집트에 전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은 내각을 해산하고 개혁을 약속했지만 국민들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무조건적인 퇴진을 요구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21세기 초반 독립국가연합(CIS)에서 일어났던 장미혁명(조지아), 오렌지혁명(우크라이나), 튤립혁명(키르기스스탄)에 이어 민주화의 무풍지대였던 중동에서도 드디어 반독재 시민혁명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이러한 시민혁명이 가장 필요한 곳은 다름 아닌 북한일 것이다.

재난과 전쟁 상황도 아닌 평시에 인구의 몇 %가 굶어죽은 지독한 가난, 비(非)왕조 국가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현실화한 3대 세습, 돈으로 사형수도 석방시키는 부패. 이런 것을 감안하면 북한은 혁명이 벌써 몇 번 일어났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스민혁명’의 향기가 북한에도 날아갈 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CIS나 튀니지 이집트에 없는 잔혹함이 이미 북한을 꽁꽁 언 동토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민주화혁명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연좌제이다. 연좌제는 ‘역적죄인’의 가문을 멸족시키는 중세 봉건의 악랄한 유물로 지금은 지구상에서 북한에만 유일하게 존재한다. 북한은 반체제 행동은 물론이고 체제에 불만만 표시해도 몇 촌 이내의 친척까지 정치범수용소에 끌고 가 죽게 만든다.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 연좌제부터 없애야 한다.

만약 튀니지와 이집트처럼 주민들이 거리에 떨쳐나서 시위하면 어떻게 될까. 몇 분 뒤 시위대는 한 명도 남김없이 사살될 것이며 하루 만에 6촌 이내의 친척들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것이다. 보안원(경찰)이 시위대에 총을 쏘지 않았다면 그 역시 똑같이 처벌된다.

여기에 철저한 폐쇄정책 때문에 외부에선 북한 내부의 일을 전혀 알 수 없다. 1998년 8월의 송림제철 시위가 대표적이다. 당시 북한은 노동자들이 굶주리는 것을 보다 못해 철을 중국에 팔아 식량을 마련하려던 제철소 간부들을 즉결처형하고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에게 인근 탱크부대를 내몰아 무자비하게 깔아 죽였다. 이 사건은 외부에 알려지지도 않았고 현장의 사진도 없다. 외부와 연결된 인터넷도 없고 언론도 당국의 철저한 통제를 받다 보니 북한 주민들도 해외의 소식을 전혀 알 수 없다. 북한 사람들에겐 위키리크스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촉발시킨 북아프리카의 시위는 다른 행성의 일일 뿐이다. 아니, 시위가 일어났단 사실조차 알 길이 막혀 있다.

북한 당국은 현재까진 이집트 사태를 주민들에게 알려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금쯤 노동당 선전부에선 “미국에 굴종하는 괴뢰정권에 분노해 이집트와 튀니지 인민들이 떨쳐 일어났다”며 “거스를 수 없는 반미 자주화 흐름 앞에 미제는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 자료를 준비해놓았을 것이다. 꽃은 얼음 위에선 필 수가 없다.

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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