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4세로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이충성, 아니 리 다다나리(李忠成·이충성의 귀화명) 선수가 아시안컵에서 일본 축구대표팀에 우승을 선사했다. 아시안컵 결승전, 그것도 연장 후반전이었다. 나가토모 유토(長友佑都)의 왼쪽 센터링을 받은 리는 기막힌 발리슛으로 승부를 갈랐다. 필자에게는 이 장면이야말로 일본과 한국의 ‘하이브리드(hybrid)’ 승리로 보였다.
하이브리드는 ‘이종혼합’으로 번역된다. 예컨대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상황에 따라 하나 또는 2개 이상의 동력원을 사용해 이동하는 자동차’를 말한다. 2개의 동력을 혼합함으로써 하나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파워가 탄생한다.
일본 축구팀의 최대 고민은 강력한 스트라이커가 없다는 점이다. 아마도 집단적인 조화를 중시하는 일본의 문화적 전통에서 유래한 것일 게다. 선두에서 공격적인 개성을 발휘하기보다는 공격수를 지원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칭찬받는 문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만약 일본 대표팀에 박지성 선수 같은 ‘이질적인 공격수’가 더해진다면 유럽의 강호에 충분히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일본 대표팀도 장점이 있다. 강력한 스트라이커가 없는 대신 미드필더와 수비수 중에 좋은 선수가 많이 있다. 그들의 탄탄한 조직력과 방어력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도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한국 팀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대표팀에 나가토모처럼 수비력이 뛰어나면서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선수가 더해지면 한국의 공격력은 더욱 빛을 발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번 아시안컵 승리는 이탈리아 출신 감독의 훌륭한 지휘의 선물이기도 하다. 알베르토 차케로니 감독은 취임 6개월 만에 일본 대표팀뿐 아니라 일한전의 특징까지 완전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경기 전날 기자회견에서 “일본과 한국은 빼닮은 팀이고 시스템도 똑같다. 그러나 알맹이는 크게 다르다. 세밀한 데까지 신경 쓰면서 90분간 쉼 없이 달리며 우리의 축구를 하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일한전은 연장전을 포함해 120분 동안 승부를 내지 못했다.
축구뿐 아니라 일본과 한국은 상호학습의 과정에 있다고 생각된다. 비슷한 정치경제 체제와 산업구조를 가진 두 나라는 경쟁과 협력을 거듭하면서 상대의 장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상대로부터 배우면서 자신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다. 이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두 나라는 공동시장을 창조하고 나아가 ‘하이브리드’로 세계를 리드하게 될 것이다.
리 다다나리의 골은 일본 사회와 재일 한국인 사회에 대한 큰 선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재일 한국인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그것을 잘 모르는 일본인은 여전히 일본 대표팀에 왜 ‘이충성’이라는 한국인이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 이 골에 용기를 얻어 많은 재일 한국인이 그들의 이름을 떳떳이 밝히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럼 ‘李忠成’은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 더는 그런 실례되는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재일 한국인으로 태어나 일본 국적을 취득해 일본 대표팀의 일원이 됐지만, 한국 출신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단번에 한국 출신임을 알 수 있는 이름을 내세웠다.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닌가. “앞으로도 일본 대표팀을 응원해 주세요.” 경기를 마치고 던진 그의 ‘쿨(Cool)’한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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