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에도 “취직은 됐느냐”는 소리가 제일 괴로웠다는 젊은층이 적지 않다. 본인들도 속 타겠지만 제 밥벌이도 못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 속에선 열불이 난다.
대통령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지난주 신년방송대담에서 대통령은 “대학 졸업하신 분들이 놀고 있는 사람이 많고 그래서 정부가 급료를 주면서 기술을 1년 코스, 6개월 코스로 하는 길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사실 독일도 대학가는 비율이 40%도 안 된다. 우리는 80%인데….”
독일 대학진학률이 40%인 이유
2009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이 81.9%다. 군 입대와 대학원 진학을 포함한 취업률이 76.4%이고 정규직 취업률은 48.3%다. 대학진학률이 절반으로 줄면 정규직 취업 100%도 가능해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졸백수 문제는 당장 해결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은 2009년 7월 원주정보공고를 찾은 자리에서도 “한국 현실이 누구나 대학을 가려 하지만 이제 한계에 왔다. 이러니 취업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청년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대학정원을 절반으로 줄이는 교육개혁을 단행하겠다고 말이다.
독일의 대학진학률이 40%인 이유는 대학입학자격시험(아비투어)을 준비하는 9년제 중등학교인 김나지움에 진학하는 학생이 딱 그 정도 비율이기 때문이다. 수월성 원칙에 따라 초등학교 때 공부 잘한 학생들은 김나지움에 가고 나머지는 실업계로 간다. 독일이 중국과 함께 글로벌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바탕엔 여기서 길러진 기술력이 있었던 것도 분명하다.
하지만 200년 전 계급사회에서 비롯된 이원적 교육제도가 21세기에도 맞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추세다. 이 나라에서 구글 같은 이노베이션이 나오지 못하는 데 대해 “월드클래스의 연구대학을 중심으로 하이스킬(high-skill)에 집중한 미국과 달리 독일은 중간기술에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노동력 스킬과 이노베이션’ 논문에서 분석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노골적으로 “독일엔 지식기반시대에 맞는 글로벌 엘리트를 길러낼 대학이 너무 적다”고 했다.
숙련된 기술 인력을 공급해온 것으로 믿었던 직업학교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훈련기회를 주는 기업이 줄고 수학 과학 공부를 못한 청년들은 유능한 기술자가 되기 힘들다는 비관론도 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직업학교를 택해 평생 그 일에 종사하게 만듦으로써 계층이동의 기회를 봉쇄하는 게 과연 공정한지의 문제도 심각하다.
‘인재강국’ 교육목표 어디 갔나
우리 대통령에게 대졸백수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면, 누구나 대학 가려는 풍토를 나무랄 게 아니라 대학을 바꿔야 한다. 좀 더 잘살아 보겠다는 우리 민족의 자랑스러운 상향본능을 대통령이 막을 순 없기 때문이다. 독일처럼 대입준비를 하는 인문계 고교 정원부터 중학교 졸업생의 40%로 낮추거나 대학정원을 40%로 축소하는 게 차라리 낫다.
단, 공평하게 한답시고 정원을 학교마다 골고루 줄이진 말기 바란다. 수월성 원칙에 따라 고교는 대입 실적이 나쁠수록, 대학은 취업 실적이 나쁠수록 정원을 조정해야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그래야 공부 안 시키는 교사가 많은 고교나 제 밥벌이할 능력도 못 키워주면서 비싼 등록금만 꼬박꼬박 챙긴 삼류대학이 사라진다.
그러나 이 방법으론 우리나라가 더는 도약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지금 선진국이 나아가는 방향과도 어긋난다. 크든 작든 한 조직의 지도자는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고, 우리 조직은 어떻게 돼야 하며, 따라서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뚜렷한 전략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OECD는 지난해 “글로벌 위기에서도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타격을 덜 받았고, 앞으로도 대학졸업자의 고용수요는 늘어날 것”이라며 “정부는 일자리와 세수(稅收) 확대를 위해 대학교육을 확대하라”고 발표했다. 개인과 나라가 대학교육에 쓰는 비용과 대학교육으로 얻게 되는 혜택을 비교해 보니 우리나라는 OECD 20개국 중 끝에서 두 번째지만 그래도 이득이 더 크다는 분석도 제시됐다. 미국의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2025년까지 고졸자 80%를 대학에 진학시키자”는 목표를 2년 전에 내놓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출범 당시 이 정부가 내걸었던 ‘인재강국’의 교육목표도 같은 의미였다고 믿고 싶다.
그렇다면 정부는 대학을 포함한 교육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여 청년 고용률을 끌어올리는 정책으로 가야 옳다. 기업 하는 환경을 깜짝 놀랄 만큼 개혁해 외국인투자기업을 포함한 좋은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은 더 중요하다. 국정기조를 ‘중도서민’으로 틀었다고 해서 교육정책마저 서민 더 많이 만들기로 가면 세계 일류를 지향하는 ‘G20세대’는 나올 수 없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