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북한의 식량난 해결을 돕겠다며 매년 40만∼50만 t의 식량을 보냈다. 북한은 연간 곡물 소비량이 약 530만 t이지만 생산량은 420만 t에 불과해 매년 100만 t 정도가 부족하다. 우리 정부가 제공한 식량은 그 절반쯤 되는 양이어서 북한 주민의 주린 배를 채우는 데 적지 않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식량난이 크게 나아지는 기미가 없어 수수께끼였다.
▷2006년 2월부터 2년 반 동안 평양에서 영국대사로 근무한 존 에버라드 씨가 의문을 풀 실마리를 제공했다. 에버라드 씨는 미국 워싱턴의 한미경제연구소(KEI)에서 “북한 장마당에서 ‘대한민국’이나 ‘WFP(세계식량계획)’라고 적힌 자루에 담긴 쌀이 버젓이 팔리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우리 정부나 국제구호단체가 지원한 식량이 주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김정일 일가, 당과 군의 실력자 등 권력자들 손에 들어갔다가 장마당에서 유통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 특권층은 주민의 굶주림까지 악용해 이중의 장사를 하는 셈이다.
▷에버라드 씨는 북한 장마당이 외부세계의 소식을 전파하는 공간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주민은 장마당에서 공개 처형, 홍수 등 여러 지역의 큰 사건에 대해 전해 듣는다”며 “지금은 이집트 사태가 장마당의 주요 화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북한 전역에 소식이 알려지는 데 한 달 정도 걸리던 것이 요즘은 3, 4일이면 퍼져 장마당이 ‘뉴스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김정일 정권한테 장마당은 계륵(鷄肋) 같은 존재다. 정보 유통의 파장이 두렵기는 하지만 배급체계가 붕괴된 상황에서 장마당을 없앨 수도 없다. 북한은 2009년 1월 장마당을 폐쇄했다가 5개월 만에 무릎을 꿇고 전면 허용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미국이 대북 식량 지원에 관해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북한은 2009년 미국의 인도적 식량 지원을 거부하고 국제구호단체 관계자들을 추방했다. 북한이 갑자기 분배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약속을 하며 손을 내미는 의도는 뭘까. ‘강성대국 원년’이라는 2012년을 앞두고 식량을 비축하려는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국제사회가 보내는 식량이 세습독재 지원용이 되게 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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