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조선(造船) 강국이면서 해운업 강국이다. 한 국가의 해운력을 측정하는 기준인 ‘지배 선대(controlled fleet)’에서 한국은 지난해 세계 5위였다. 적재 가능 총중량 기준으로도 그리스 일본 독일 중국에 이은 5위다. 해운업은 2008년 470억 달러를 벌어들여 수출산업 가운데 조선(431억 달러) 석유제품(376억 달러) 자동차(350억 달러) 반도체(328억 달러)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정부가 2020년까지 세계 3대 해운강국으로 도약한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워놓고 있는 마당에 해적들에게 한국 선박이 ‘봉’으로 인식되고 있다면 큰일이다. 삼호주얼리호 납치 해적들은 모선(母船)에 탔던 이란 국적 선원에게서 삼호주얼리호의 운항 정보를 입수했다. 이들은 삼호주얼리호가 950만 달러라는 해적 인질 사상 최고 몸값을 주고 풀려난 삼호드림호와 같은 해운사 소속임을 알고 박수치고 노래하며 축하 파티까지 벌였다.
남해지방해양경찰청은 어제 삼호주얼리호 피랍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표적 납치는 아닌 것 같다”고 밝혔지만 해적들이 모선으로부터 삼호주얼리호의 운항 정보를 알아낸 만큼 표적 납치가 아니라고 보기 어렵다. 철저한 보강 수사가 필요하다. 해적들이 한국 선박이나 선원들을 몸값 받아내기 만만한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증거는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번에 붙잡힌 해적들을 단호하게 처벌하고 앞으로 비슷한 피랍사건이 또 발생할 경우 강력한 대응으로 해적들이 한국 배를 함부로 못 건드리게 만들어야 한다.
해경은 체포된 해적 5명 가운데 무함마드 아라이가 석해균 선장에게 총을 쏜 혐의를 입증했다며 해적들을 해상강도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그러나 해적들의 배후조직이나 삼호주얼리호 납치 준비 및 실행 과정에 대한 수사는 미흡하다. 해경은 아라이의 자백도 받아내지 못했다. 검찰이 후속 수사에서 밝혀내야 할 부분이 많다.
아프리카 지역을 중심으로 해적들이 들끓고 있지만 해적들이 체포돼 사법처리된 사례는 많지 않다. 한국의 이번 사법처리 절차와 결과는 국제사회에 중요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아울러 현재 유엔 해양법협약에 따라 각국 법원이 맡고 있는 해적 처벌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맡기거나 유엔 차원에서 해적전담재판소를 설립하는 방안을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할 때다.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주도하는 외교력을 발휘한다면 국가 위상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