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사람들은 이번 이집트 반정부 시위를 보면서 친정부 시위대의 무자비한 폭력에 새삼 놀랐을지 모르겠다. 이집트 민주화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1979년 이란 혁명이 그랬다. 민초들이 혁명을 시작했지만 결과는 여성과 소수자를 억압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정권 출범으로 끝이 났다. 1989년 동유럽 혁명은 반대였다. 이 혁명으로 동유럽에는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뿌리내렸다.
이집트 시위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시위대의 목소리에 해답이 있지는 않을까. 타흐리르 광장에서 1주일을 보내면서 시위대의 자제력과 절제심에 감명받을 때가 많았다. 친정부 시위대가 벽돌을 던지고 최루가스로 위협해도 이들은 굴복하지 않았다. 이따금 총성이 들릴 때도 흥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물론 친정부 시위대가 외신 기자들을 탄압했기 때문에 내 판단이 한쪽으로 치우쳤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호텔 방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타흐리르 광장은 늘 안전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 만나 궁금한 걸 마음껏 물을 수 있었다.
취재를 하면서 여성과 콥트 기독교도들의 시각이 궁금했다. 행여 이집트 민주화가 이들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말했다. 한 여교수는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서면 우리 권리를 빼앗기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사람들이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인 무슬림형제단이 권력을 쥐게 될까 너무 걱정한다는 뜻이었다.
이 교수는 “우리는 무슬림형제단을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다음 선거에서 이들이 지지율 25%를 기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를 엉망으로 한다면 그 다음 선거 때는 표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 국가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은 사례는 거의 없다. 그 대신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처럼 부패하고 무능한 친(親)서방 정권이 중동 세계를 이끌어 왔다. 독재에 질린 일반 대중은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존중하는 편이다. 그런데 원리주의 세력이 실제 국정 운영을 맡아도 계속 지지를 받을 수 있을까.
1990년대 예멘에서 이슬람 정당 ‘이슬라’가 연정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이슬라가 교육부를 맡게 됐을 때 “아이들에게 세뇌 교육을 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다. 이슬라의 ‘행정력’에 예멘 사람들은 실망했고 다음 선거 때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반(反)이스라엘 정서도 서양 사람들 예상하고는 조금 다르다. 시위대가 무바라크 대통령을 ‘미국의 하수인’이라고 부르는 건 맞다. 무바라크 대통령 이마에 ‘다윗의 별’(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육각별)을 그린 캐리커처를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많은 이집트 사람은 실리적 측면에서 이스라엘과 평화적인 관계가 계속되기를 바란다.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를 지지하는 것하고는 또 다른 문제다.
중동에서 독재정권이 무너지면 선동가나 국수주의자들이 판을 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들은 미국이나 이스라엘에도 있다. 알카에다 같은 극단주의 세력은 지금도 활동 중이다. 독재정권의 억압, 투옥, 고문이 극단주의 세력의 등장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않았을까. 극단주의 세력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이집트 사람들의 자유와 민주화 열망을 꺾으려고 한다면 비극이 될 것이다.
한 사업가에게 이집트 민주화가 원유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왜 석유가 중동의 전부여야 하는가? 우리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다. 우리도 그저 민주주의를 쟁취하고 싶을 뿐이다. 그게 범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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