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일부 대학교수들의 연구비 유용 사례가 언론에 보도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모 대학교수는 학생들에게 지급된 인건비를 다시 받아 개인 용도로 쓰고, 어떤 교수는 국가연구비로 유흥음식점에서 술값을 냈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 국민은 국가연구비가 줄줄 새거나 눈먼 돈이라는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며 분개한다. 반면 교수들은 일부의 몰지각한 행동으로 전체 교수가 매도당한다며 억울해한다.
그러면 국가연구비 유용 규모는 어느 정도이고 얼마나 심각할까. 사실 문제는 이에 대한 답을 정확히 모른다는 데 있다. 올해 국가연구비는 약 15조 원(국방 분야 연구비 제외)으로 국가 예산의 4.7%이다. 자연계 교수 10명 중 3명이 국가연구비를 지원받고 있다. 이렇게 상당한 규모로 지원이 이루어지지만 사후 관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연구자들은 연구 종료 후 보고서와 함께 잔액을 국고에 반납하지만 부정 사용은 누가 신고하기 전에는 알 도리가 없다. 연구비를 횡령한 교수가 자진해 보고할 리는 만무하고 정부나 한국연구재단이 조사해야 하는데 이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연간 연구비는 대략 3조 원이고 부정 사용으로 회수한 금액은 4억 원 정도다. 이는 교수들이 연구비를 적정하게 사용하거나 연구재단이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거나 둘 중의 하나다.
최근의 연구비 횡령 사건들이 연구관리 기관이 아닌 감사원이나 경찰 등에서 조사해 드러난 것은 국가의 연구관리 시스템에 허점이 있음을 보여준다. 일부 교수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정부가 그동안 연구비 관리에 비교적 관대했던 것은 국가 정책의 초점이 연구개발비 확대에 맞춰져 왔기 때문이다. 연구가 시급한 마당에 연구비 사용 절차를 까다롭게 하면 연구 활동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투자는 국가적 과제이고 앞으로 계속되겠지만 연구비 관리도 연구자의 양식을 믿고 자율에 맡겨도 될까. 미국의 사례를 보자. 미국의 윤리 문화나 교수들의 윤리 의식이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미국 과학재단은 70명의 전문 감사팀을 운영하면서 대학의 연구비 관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이들은 1년 내내 이 일만 한다. 그런데 미국보다 윤리 면에서 앞서 있다고 할 수 없는 우리는 연구자가 제출한 정산 보고서만 형식적으로 몇 명이 들여다보고 있으니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제 연구비 투자 못지않게 그 이후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흔히 투자를 하면 연구 성과를 재촉하고 결과를 당장 보여 달라고 하는데 과학기술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이게 얼마나 무리한 요구인지를 잘 알 것이다. 특히 기초과학은 그렇다. 연구비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또 다른 방법은 연구비를 어디에 어떻게 사용했는가를 살피는 것인데 이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고가 장비를 사서 실험을 했다면 그 실험이 연구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만(많은 경우 실험이 실패로 끝나기도 한다) 장비를 새로 구입했다고 허위로 서류를 꾸민다든가 하나의 장비를 사고 두 부처에 영수증을 제출한다든가 하는 문제는 전문가와 감독 시스템을 갖춘다면 거의 방지할 수 있다. 이런 감독 절차가 생긴다고 해서 연구 자율성을 해치지도 않는다. 국가연구비 부정 사용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여러 대책을 내놓아 앞으로 많이 개선되리라 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리기관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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