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태훈]난장판 된 스모판, 그리고 씨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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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9일 03시 00분


황태훈 스포츠레저부 차장
황태훈 스포츠레저부 차장
지난해 11월 15일 후쿠오카에서 열린 스모 규슈대회에서는 탄성이 쏟아졌다. 몽골 출신 요코즈나(천하장사) 하쿠호가 일본인 선수 기세노사토에게 밀려 경기장 밖으로 나동그라졌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63연승 중이었다. 후타바야마(1912∼1968)가 1939년 세웠던 69연승 도전이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아사히신문 1면에는 관중석에 쓰러져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쿠호의 사진이 실렸다. 사진 속 관객들의 표정은 묘했다. 웃으며 박수를 치는 이들이 더 많았다. 자국 선수가 이기길 바라는 속내가 느껴졌다. 스모는 일본의 국기(國技)이자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는 스모 흥행을 위해 도입한 제도다. 몽골 크로아티아 슬로바키아 등 외국인 선수는 스모의 볼거리 가운데 하나다. 일본인은 내심 스모에서 외국인 선수가 연승을 달리거나 기록을 깨는 걸 원하지 않지만 현실은 달랐다. 하쿠호 직전 요코즈나는 같은 몽골 출신의 아사쇼류였다. 최근 스모 대회 우승자는 대부분 몽골 선수의 차지였다. 기세노사토의 승리는 스모 팬에게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 셈이다.

그런 스모가 최근 패닉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일부 스모 선수의 야쿠자(조직폭력배)와 관련된 야구 도박 사건이 터진 데 이어 신년 벽두부터 승부 조작 사건이 불거졌다. 스모협회는 3월 오사카에서 열 예정이던 대회를 중지하기로 결정했다.

아사히신문 2월 7일자 1면 톱기사 제목은 ‘스모 대회, 승부 조작 전모 밝혀질 때까지 중지’였다. 스모 역사에 최대 오점으로 남은 만큼 5월 대회도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일본 시민들의 반응도 냉소적이다. “이런 일이 터질 줄 알았다” “이 기회에 스모협회를 개조해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한편에선 “대부분이 성실한 선수들인 만큼 일본의 국기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오사카의 상인들은 “3월 대회 중단으로 큰 피해를 봤다”며 조속한 대회 재개를 희망했다.

스모 선수의 도박과 승부 조작은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범죄행위다.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그만큼 스모가 인기를 얻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스모와 닮은 한국의 국기, 씨름은 어떤가. 2000년대 들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한때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등 스타를 양산했던 씨름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4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설날장사씨름대회는 4000여 석이 가득 찼다. 하지만 모두 무료 관중이었다. 1만 엔(약 13만 원) 내외의 고액 입장료에도 1만여 좌석이 매진되는 스모 대회와는 대조적이다.

한 씨름 관계자는 “씨름의 몰락은 변화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스타를 키우는 데 소홀했고 체중만 불려 재미없는 경기를 해왔다는 거다. 씨름협회는 최근 샅바를 놓는 선수에게 경고를 주고 160kg이 넘는 선수는 출전을 제한하는 촉진 룰을 만들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08년 스포츠산업 육성 중장기 계획(2009∼2013년)에서 씨름의 활성화를 약속했다. 전국 중소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연고형 리그제를 도입하고 씨름 전용관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씨름판은 여전히 지원에 목마른 상황이다. 일본 스모가 부정부패로 매를 맞고 있지만 프로야구와 함께 인기 스포츠의 지위를 유지해온 건 변화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모를 벤치마킹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황태훈 스포츠레저부 차장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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