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왕 김봉연이 1981년 실업팀 한국화장품에서 받은 연봉은 상여금까지 합쳐 480만 원이었다. 이듬해 프로야구가 출범했다. 김봉연은 과연 얼마를 받아야 할까. 10배라는 파격적인 답이 나왔다. 이용일 한국야구위원회 초대 사무총장은 시대를 앞서가는 사람이었다. 정년이 보장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몇 년 남지 않은 선수 생활에 올인한 베테랑을 위한 배려였다. 그래서 나온 김봉연의 적정 몸값은 계약금 2000만 원에 연봉 2400만 원.
그러나 김봉연은 이 돈을 다 받지 못했다. 해태는 특급 선수의 기준선이 될 김봉연의 몸값을 깎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결국 김봉연은 계약금 1500만 원, 연봉 1800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그래도 이 돈이면 당시 서울 강남의 대형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었다. 나머지 선수들의 계약은 일사천리였다. 미국에서 돌아온 박철순이 연봉 2400만 원을 받았지만 다른 누가 감히 김봉연보다 많이 요구할 수 있었겠나. 1930년 8만 달러를 받은 베이브 루스의 연봉이 17년이 지난 뒤에야 밥 펠러에 의해 깨진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최동원 선동열 김재박 등 그해 서울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멤버들은 입단하기 전이었다.
이후 최동원이 줄곧 최고 연봉을 받았지만 억대 연봉자는 되지 못했다. 최동원은 연봉 협상 때마다 롯데와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게 다시는 고향 팀에 돌아오지 못하는 족쇄가 됐다. 연봉 1억 원의 마지노선이 뒤늦게나마 1991년에야 깨진 것은 선동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선동열의 존재는 역설적으로 선수 복지에 악영향을 끼친 점도 있었다. 선수가 팀을 옮길 수 있는 자유계약선수(FA) 제도는 선동열이 일본 주니치로 가고 난 뒤에야 비로소 생겼다. 선동열이 해태에서 11년간 번 돈은 2006년 입단한 KIA 한기주의 계약금 10억 원보다 적다.
이렇듯 초창기에 각 구단의 허리띠 졸라매기가 워낙 심했던 탓에 국내에선 야구가 다른 종목에 비해 연봉이 낮은 기현상이 일어났다. 박찬호는 텍사스 시절인 2002년부터 5년간 평균 1300만 달러를 받았다. 당시 축구 최고 연봉자였던 프랑스 지네딘 지단의 600만 달러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현재까지 FA가 아닌 선수가 받은 프로야구 최고 연봉은 2003년 이승엽이 삼성에서 받은 7억 원이다. 롯데 이대호는 전인미답의 타격 7관왕과 9경기 연속 홈런을 기록하고도 올해 연봉이 6억3000만 원에 머물렀다. 지난달 이대호가 공개한 연봉 조정 신청 자료에도 나와 있듯이 소비자 물가는 2003년에 비해 23.6%가 상승했다. 이승엽은 현 물가로 따지면 8억6500만 원을 받은 셈이다. 결국 이대호는 이승엽보다 7000만 원이 아니라 2억3500만 원을 적게 받은 셈이다. 강남의 중형 아파트 한 채 값을 받았던 박철순과 비교해 봐도 적다.
게다가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이대호의 연봉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미국은 뉴욕 양키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3200만 달러(약 355억 원), 일본은 니혼햄의 다르빗슈가 5억 엔(약 67억 원)으로 각각 56배, 10배에 이른다. 시장 규모가 그 정도 차이는 아닐진대 말이다.
이대호의 적정 몸값이 얼마인지를 가리는 것은 기자의 몫은 아니다. 다만 이대호가 FA가 되는 내년에 최동원의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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