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지난해 716억 달러의 해외건설, 645억 달러의 해외플랜트를 수주했다. 올해 수주액은 해외건설 800억 달러, 해외플랜트 7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금융 및 재정위기 여파로 해외 수주액이 줄어들 것이란 예상과 달리 좋은 실적을 낸 것은 우리나라가 건설과 발전, 석유화학 등의 분야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형 해외플랜트는 입찰 형태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세 가지 요소에 따라 수주 여부가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수출기업의 공사 수행능력과 경험, 재무상태이다. 발주자가 공사를 따내려는 기업의 공사 수행능력과 재무상태 등을 검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둘째는 가격이다. 발주자는 요구하는 기술적 기준과 공사기간 내에 최소 비용으로 플랜트가 건설되기를 원한다. 셋째는 중장기 수출금융 또는 연불금융이다. 대형 플랜트의 경우 발주자가 공사 대금의 상당 부분을 플랜트 완공 이후 장기에 걸쳐 지불하는 사례가 많다. 따라서 수주를 원하는 국가의 공적 수출신용기관은 발주자에게 중장기 신용을 대출과 보험, 보증 형태로 제공해 수출기업의 수주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시중은행은 대규모 금융을 장기로 제공하는 게 어렵기 때문에 각국의 수출신용기관들이 중장기 신용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플랜트 수주와 세계 조선강국으로의 도약에서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숨은 공로자라고 할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각국 수출신용기관의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이를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듯 각국 수출신용기관이 자국 수출기업의 해외 수주활동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을 플랜트와 건설, 금융 분야 종사자들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일반인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최근 아랍에미리트 원자력발전소 수주 배경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원전과 같은 대규모 플랜트를 수주할 때 수출입은행 등이 수출금융을 제공한 것을 ‘조건부’ 또는 ‘이면’이라는 단어로 폄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세계 플랜트시장에서 이것은 일반적인 비즈니스 형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공적 수출신용기관의 역할을 증대시켜 세계 주요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원전과 고속철도 등 대규모 해외플랜트 입찰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수주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프랑스와 일본은 원전 수주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원전 수주의 관건은 장기간의 원전 운영 경험과 기술의 안정성이라고 알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필자는 우리나라 원전기술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공적 수출신용기관의 중장기 수출금융 제공 없이는 국제 원전 입찰에서 다른 나라들과의 경쟁을 뚫고 공사를 따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원전 수출은 물론이고 정유 및 석유화학 등 다른 분야의 대형 플랜트도 중장기 수출금융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수출기업들의 수주 확률이 현저히 떨어질 것이란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대부분의 중동 국가는 오일달러로 벌어들인 돈 덕분에 우리나라보다 신용등급이 높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장기적인 성장기반이 부족해 원전을 비롯한 사회 인프라 개발이 시급하다. 지금은 우리나라 해외플랜트 수주 경쟁력의 핵심 축인 기술과 경험, 가격경쟁력과 중장기 금융 제공을 더욱 강화해야 할 시점이다. 소모적 논쟁으로 국력을 더는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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