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와 자녀 등 4인 가족에 연봉 4000만 원인 직장인이 작년에 신용카드로 2000만 원을 썼다면 카드 공제만으로 21만 원가량의 세금을 덜 낸다. 그러나 금년 말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가 폐지되면 2013년부터 연말정산 때는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카드 소득공제 폐지는 사실상 증세(增稅)인 셈이다.
직장인 10명 가운데 4명이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을 받는다. 2009년 전체 직장인 1425만 명 가운데 39.9%인 568만여 명이 카드 소득공제에 따른 세금 감면 혜택을 받았다. 카드 소득공제 제도가 폐지되면 이들 봉급생활자는 지금까지 안 내던 세금 1조2000억 원가량을 더 납부해야 한다. 그것도 주로 중산층 이하 봉급생활자들의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 연봉 2000만∼4000만 원을 받는 사람이 소득공제를 받는 전체 직장인의 42.2%를 차지하는 반면 1억 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2.3%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의 ‘친(親)서민’ 기조와도 맞지 않는 정책이다.
정부는 당초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도입한 목적은 봉급생활자에 대한 세금 감면이 아니라 탈세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제 신용카드 사용 문화가 정착된 만큼 공제 혜택을 줄여가는 게 맞다는 견해다. 그러나 카드 소득공제 폐지는 자칫 자영업자의 탈세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 공제 혜택이 없어지면 사업자들이 현금 결제 조건으로 가격을 할인해주는 방식으로 매출을 누락시켜 세금 부담을 줄이려는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세금을 더 거둬야 하는 당위성을 인정하더라도 저소득층과 중산층 근로자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 조세의 형평성을 잃으면 조세저항과 마찰을 초래할 수 있다. 시민단체인 한국납세자연맹이 8일 시작한 ‘카드 소득공제 폐지 반대’ 서명운동에 3일 만에 3만 명이나 참가한 것을 보더라도 반발이 만만찮다.
정부는 소득공제 폐지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는 말만 내놓고 있다. 세금과 관련된 정책 변경은 사전에 예고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민주당 신학용 의원은 지난달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2년 연장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정부는 국회에서 법안이 처리될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지 말고 합리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