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구도를 완화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편 방안으로 석패율(惜敗率) 제도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정치권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 석패율 제도를 언급했고 이재오 특임장관은 2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당장 1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적용하는 게 옳다”고 말했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석패율 제도는 어느 때보다 실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석패율 제도는 국회의원 총선 후보자가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동시 출마해 중복 출마자 가운데 가장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뽑는 제도다. 세계에서 일본이 유일하게 1994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일본 중의원은 300명이 지역구로, 180명이 비례대표로 각각 선출된다.
특정 정당이 독식(獨食)하는 지역정당 구도는 영호남에서 두드러진다. 현재 영남권(67석)에선 한나라당이 61석(91%)을, 호남권(30석)에선 민주당이 29석(97%)을 차지하고 있다. 양당의 배타적인 독식구조로 지역 내의 다양한 목소리가 중앙 정치에 수렴되기 어렵다. 해당 지역을 볼모로 한 구태 정치도 기승을 부린다. 석패율 제도가 도입되면 열세 지역에서 2등을 한 후보에게 비례대표로 부활할 기회가 제공돼 취약 정당의 후보도 적극적으로 선거운동을 벌이게 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취약 지역에서 정당 활동의 교두보를 만들면 고질적인 지역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이 제도가 퇴출 위기에 몰린 여야 유력 정치인들이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중복 출마해 손쉽게 당선되는 수단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정당이 전문성을 갖춘 신진 인사들을 적극 발굴하는 공천 기준을 세워 선의의 개혁경쟁을 벌여야 한다. 현행 비례대표 정원(54석)을 유지한 채 일부만 석패율 제도 적용 대상으로 할 경우 분야별 전문가와 정치적 소수자를 배려하는 비례대표제의 입법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석패율 제도의 실질적 효과를 내기 위해 비례대표 의석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지역구 의석을 건드리지 않고 슬그머니 전체 의석수(총원 299명)를 늘리자는 논의로 이어지면 국민의 불신이 높아져 석패율 제도 도입이 명분을 잃고 실패로 끝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