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북한 민주화 방해하는 남한 민주화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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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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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작년 여름 미국 워싱턴포스트 계열의 정치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oreign Policy)가 세계 최악의 독재자 23명을 추려냈다. 최악 중 최악(The Worst of the Worst)은 노스 코리아의 김정일이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11위, 이집트의 무바라크는 15위였다.

중동 민주화는 지지, 北에는 침묵

70억 세계인 가운데는 사우스 코리아와 노스 코리아를 혼동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코리아라면 김정일을 떠올리는 세계인에게 ‘코리안’은 오명(汚名)이 되고 만다. 김정일은 독재자를 넘어 반인륜범죄자로, 한민족을 부끄럽게 만드는 존재다.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들 중에 자칭 진보세력은 지금도 이 나라를 ‘민주 대 반민주’로 가르려 한다. 자신들은 민주세력이고, 반대 진영은 반민주세력이라고 딱지 붙인다. 노무현 정부의 법무부 장관을 지낸 천정배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독재자다. 이명박 정권, 죽여버리겠다”는 극언까지 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하 비방하는 호칭과 욕설은 정치권과 인터넷을 비롯한 시중에 난무한다. 아무튼 천 의원은 건재하고, 온갖 대통령 모독행위도 법에 의하지 않고 처벌되는 일은 없다. 천 의원이 평양에 가서 ‘김정일은 독재자’라고 했다면 살아서 돌아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남한에서도 김정일 비판을 꺼리는 그가 진짜 독재자 소굴에 가서 그런 말을 할 리는 물론 없다.

진보 정치학자 가운데 최장집 교수는 이명박 정부 3년을 돌아보며 “민주주의는 후퇴하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평가했다. 이것이 상식에 가깝다. 이쯤에서 한국의 민주화세력이 눈을 돌려야 할 곳이 어디인지는 자명하다. 북한이다.

그러나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북한 민주화나 주민 인권보다 김정일 집단의 심기(心氣)에 더 신경 쓰는 모습이다. 박 의원은 “북한을 자극하면 북한도 자구(自救) 차원에서 무엇인가 또 ‘일’을 하기 때문에 삐라 살포 등 우리 정부의 심리전은 필요 없다”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조차 ‘일’이라고 표현하는 세심한 배려가 놀랍다. 북한 주민의 어둠은 방치하고 북한 정권에만 ‘햇볕’을 제공하는 것은 반민주 부채질이다.

국내 좌파도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를 비롯한 북아프리카 중동의 민주화 확산에 대해서는 ‘인류 보편의 가치 실현’이라고 평가한다. 이 계통의 한 신문은 “국제사회의 관심이 중요하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인권, 그리고 경제적 평등의 확산을 바라는 아랍인들의 싸움에 지지를 보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썼다. 맞는 말이다.

북한인권법 거부세력 국회 장악

서울에서 이집트 카이로는 8500km, 리비아 트리폴리는 1만1200km 떨어져 있다. 그 먼 나라 시민들의 자유와 인권, 경제적 평등을 열망할 정도면 2400만 북한 주민에게 먼저 눈길을 주는 게 정상이다. 서울에서 평양은 240km고, 개성까지는 30∼40분이면 달릴 57km다. 헌법상의 대한민국 영토라는 사실마저 제쳐두더라도 동족(同族)이 있는 곳이다. 그럼에도 남한의 진보라는 사람들은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어떤 행동도 할 생각이 없다. 아예 말조차 않는다.

몇몇 좌파 시민단체는 “이명박 정부가 리비아 상황에 대해 부끄러운 침묵을 지키고 있다”며 항의시위까지 벌였다. 이들 단체는 카다피를 향해 “42년 독재도 모자라 권력세습을 꾀하며 의회와 헌법을 폐기했고 모든 방송을 관영화해 검열한다”고 비난했다.

김일성 김정일 부자는 62년 수령독재 공포정치도 모자라 3대 세습까지 꾀하며 ‘거수기 인민회의’와 ‘앵무새 방송’밖에 허용하지 않고 20만 명을 정치범 수용소에 가두었다. 북한의 경제사회적 불평등 역시 세계 최악이다. 김정일 일가의 호화사치는 상상을 초월하고, 김일성 왕조를 옹위하는 일부 특권층도 ‘기쁨조’라는 성적 노리개 여성들을 따로 두고 있을 정도다. 그 뒷전의 대다수 주민은 세계로부터 차단당한 채 인간 이하의 삶에 신음하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회는 북한인권법 하나 제정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 민노당이 입법을 한사코 반대하고, 한나라당은 무기력하다. 미국은 이미 7년 전인 2004년에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시한을 거듭 연장하면서 대북 인권운동단체 등을 지원하고 있다.

입만 열면 인권을 외치는 이 땅의 이른바 진보 민주화세력은 이제 가면을 벗을 때가 됐다. 당신들은 더 이상 민주화세력도, 진보세력도 아니다. 세상에 어떤 진보가 상시적으로 인권유린을 당하는 동족을 수십, 수백 km 옆에 두고도 이들을 탄압하는 세계 최악의 독재정권만 두둔한단 말인가.

이명박-한나라당 정권 또한 ‘감이 저절로 떨어지듯’ 언젠가는 통일의 기회가 오겠지 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 북한 민주화를 위한 전략도, 행동도 없다면 통일의 기회가 오더라도 북한 주민들의 이반 속에서 기회를 날려버릴 수 있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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