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어제 라디오 연설에서 “사유화한 공권력으로 시민을 유린하던 바로 그 세력이 중동의 민주화 물결을 빙자해 북한의 민주주의를 거론한다면 이는 낡은 이념의 질곡으로, 민주주의에 방해가 될 뿐”이라고 말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 시위 소식을 들으면서 지척에 있는 북한의 민주화를 떠올리는 것은 우리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리의 염원 속에는 북에도 민주화가 찾아와 동포의 고통이 끝나기를 바라는 소박한 꿈이 담겨 있다. 이를 두고 ‘사유화된 공권력으로 시민을 유린하던 세력’의 ‘나쁜 생각’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국민 모욕이다.
‘북한 민주화 거론은 낡은 이념’이라는 말도 이해하기 어렵다. 자유를 향한 갈망이 낡은 것인가.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를 보면서 “세계사는 한 사람(왕이나 독재자)의 자유로부터 모든 사람의 자유로 나가는 것”이라는 헤겔의 역사철학을 떠올린다. 입만 떼면 ‘진보’ 운운하면서 그 장엄한 역사의 진보가 북녘 땅에서 이뤄지기를 바라는데 대해 ‘낡은’이란 낙인을 찍는 손 대표가 바로 수구(守舊)다. 누구도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를 예상하지 못했지만 역사는 예상을 뛰어넘어 전진하고 있다. 북한 민주화를 거론하는 것은 자유를 향한 갈망이 인류 보편의 것이고 북한도 예외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손 대표는 ‘풍선에 전단이나 날려 보내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북한 주민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면, 독재정권이 억압하지 못하는 자유 언론을 갖고 있다면, 그래서 중동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안다면 누가 힘들게 전단을 날려 보낼 것인가. 가정에 인터넷이 깔려 있지 않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북한이다. 북한은 전역이 소련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명명한 수용소 군도(群島)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동토와 암흑의 땅에 풍선에 실은 전단으로나마 소식을 전하겠다고 애쓰는 사람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손 대표는 논리에도 닿지 않는 비난을 하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하야 직후 ‘물러날 독재자’를 꼽았을 때 김정일이 1위였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2위로 밀렸다. 이런 국제사회의 상식이 손 대표에게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다. 북한은 최근 입만 열면 ‘핵 참화’ 운운하며 협박을 한다. 북한의 민주화를 위한 열망의 결집이야말로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강력한 우리의 무기다. 그런데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북한 민주화 운동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재를 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