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배진선]동물원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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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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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기획팀장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기획팀장
소독약도 얼려버릴 혹독한 추위 속에서 동물원 문을 닫아걸고 벌였던 구제역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동물원 여기저기서 들리는 새들의 울음소리와 동물들의 달라진 움직임에서 봄기운이 느껴진다. 방에만 있던 알락꼬리여우원숭이는 봄볕이 잘 드는 곳을 골라 대장 수컷이 몸을 쭉 펴고 앉고 그 옆에 암컷과 새끼들까지 몰려들어 한 가족이 해바라기를 한다. 바람 잔 날 밖으로 나온 기린도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봄을 몸으로 느낀다. 봄을 타는 것은 사람만이 아닌 모양이다. 겨울 동안 먹성 좋게 먹어대던 호랑이들은 봄이 되면서 식욕이 떨어진다. 그렇게 좋아하는 고기를 던져줘도 본체만체하고 평상 위에 나란히 누워 연방 하품을 하며 낮잠을 잔다.

날씨도 날씨지만 해가 길어진 것을 귀신처럼 아는 새들은 봄을 맞아 짝을 고르느라 정신이 없다. 수컷들은 맘에 드는 암컷을 골라 자신의 구애를 받아줄 때까지 끈질기게 쫓아다니고, 날개를 위협적으로 펄럭거리거나 목청을 높여 울면서 경쟁자를 쫓아낸다. 그래서 새들의 봄은 바쁘고 소란스럽다. 참새와 멧새, 박새 같은 작은 새들은 짝을 찾아 열심히 구애를 하고 목청껏 노래하며 자신의 영역이라고 알린다. 덩치 큰 타조도 긴 목을 트럼펫처럼 울려 묵직한 소리를 내며 자기를 과시한다. 소란스럽기로 하면 큰물새장의 홍부리황새가 으뜸이다. 수도 많지만 부리를 부딪쳐 내는 ‘딱딱딱’ 소리가 봄이 되면 더 커진다.

홍부리황새만큼 요란하지는 않지만 두루미들에게도 봄은 중요한 시기다.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고 날개를 펄럭이며 구애의 춤을 춘다. 우아해 보이는 학춤이지만 이 시기가 사육사에게는 가장 위험한 때다. 두루미는 땅에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기 때문에 이때만 되면 매일 보는 사육사라도 먹이를 주러 다가가면 행여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것이 아닌가 하여 긴 다리로 성큼 달려들어 날카로운 부리로 눈을 공격한다.

큰물새장 밖에서도 야생 왜가리와 사육사 간에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왜가리는 서울대공원에서 가장 높고 전망 좋은 큰물새장 위에 둥지를 짓겠다고 하고, 왜가리의 똥이며 썩은 먹이들이 둥지에서 새장 안 연못으로 떨어지면 물을 부패시켜 그 안에 사는 귀한 새들이 위험해지니 사육사는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왜가리 둥지를 철거하기 위해 30m 높이의 큰물새장 그물 지붕 위를 오르내리고 꼭대기에 종을 매단 밧줄을 걸어 아래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둥지 짓기를 방해하고 있다. 지금도 왜가리 무리는 인근 해양관 지붕에 앉아 호시탐탐 둥지 자리를 노리고, 사육사들도 여차하면 지붕 위를 또 오를 생각으로 둘 사이에 신경전은 계속되고 있다.

봄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새끼들의 울음소리도 높아진다. 천연기념물 잔점박이물범은 2월 말에 새하얀 새끼를 낳았고 조금 있으면 사슴이며 영양들의 새끼들이 세상에 나올 것이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굴속으로 들어갔던 반달가슴곰 ‘으뜸’이도 봄을 준비하고 있다. 추위가 심했던 1월 초에 새끼 2마리를 낳아 젖을 먹이고 행여 추울까 따뜻하게 보듬어 가며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고 있다. 이번에 태어난 새끼 두 마리도 2년 전에 태어난 형제를 따라 지리산으로 가서 야생 방사훈련을 거친 후 자연의 품으로 보내질 예정인데 3월이 지나갈 때쯤이면 굴 밖에서 아장아장 걷는 새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의 외투가 가벼워지듯 동물들도 큼지막한 돌에 몸을 이리저리 비벼대며 두꺼운 털옷을 뭉텅뭉텅 벗겨내고 산뜻한 새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혹한과 구제역에 맞서 싸워 건강하게 이겨내 준 동물들이 있어 이 봄이 여느 봄보다 더 반갑고 기쁘다.

배진선 서울동물원 동물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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