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규형]中, 진정한 대국 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1일 03시 00분


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올림픽 개·폐회식을 보면 주최국의 수준과 지향점이 보인다. 88서울올림픽은 위대한 이벤트였지만 의욕 과잉의 개·폐회식은 당시 한국의 2% 부족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개·폐회식(총감독 장이머우)은 현대 중국을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했다. 엄청난 스케일의 물량 공세로 역사문화유산을 세계에 자랑했다. 도약하는 중국의 세를 과시하는 중화(中華)주의 선포식의 인상도 강했다. 체조스타 리닝(李寧)이 공중에서 스타디움을 돌고 성화를 점화한 것은 올림픽 역사에 길이 기억될 장관이었다. 반면 역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감을 노출시켰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절제미가 결여된 과잉이 나타났다. 특히 폐막식은 곡예단 수준의 중구난방이었다. 후반부에 다음 올림픽 개최지 런던이 몇 분간의 세련된 공연을 선보였는데, 이것이 앞서 몇 시간의 방만한 중국 행사를 간단히 압도했다.

작년 중국은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을 넘어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영국 경제학자 앵거스 매디슨은 “2015년경 중국 경제규모가 미국을 앞지를 것”이라고까지 섣부르게 예측했다. 이제 세계는 G2(미국과 중국)가 이끈다. 하버드대 니얼 퍼거슨 교수는 저서 ‘금융의 지배’에서 이것을 ‘차이메리카(Chimerica) 시대’라 불렀다. 중국이 저가 상품을 수출해서 얻는 경상수지 흑자로 미국의 국채를 사면서 미국은 적자재정을 메우는 동시에 중국 상품을 수입·소비하는 공생 관계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호의존 관계는 경제버블의 한 원인이었지만 아직 지속되고 있다.

패권국 올랐지만 리더 자질 부족

그러나 진정한 초강대국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중국학자가 잘 표현했듯이 내륙지역 중국인의 생활은 아직 제3세계 수준이다. 정치 사회의 민주화 정도도 미약하다. 2008년 12월 중국 지식인 303인은 세계인권선언 60주년에 맞춰 인권보장과 일당독재의 종식을 중국 정부에 촉구하는 ‘08 헌장’을 공표했다. 훗날 역사는 이 사건을 1977년 공산주의 시절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를 요구한 77 헌장(하벨 주도)에 비견되는 일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또한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 사장을 지낸 후지웨이를 포함한 중량급 원로 지식인 23명은 작년 10월에 언론자유 보장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한반도 수천 년 역사에서 지난 20여 년간이 중국에 큰소리쳤던 처음이자 마지막 시대로 기록될지 모른다.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났다. 그래서 한국은 패권국으로 다시 떠오르는 중국 앞에서 다소 굴종적인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중국 문제 전문가는 한국인에게는 장구한 세월 동안 중국의 조공 국가로 살아온 DNA가 있어서 중국의 횡포에 대해선 일본의 횡포와는 달리 어느 정도 감내하려는 성향이 있다고까지 얘기한다.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한국과 중국은 밀접한 협력과 상생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신(新)조공체제로 가자는 얘기는 옳지 않다. 그런데 중국의 최근 한반도 관련 성명들은 청나라 말기의 위압적 태도를 연상케 한다. 천안함과 연평도 문제는 물론이고 한국 해경함을 들이받은 중국 어선에 대해 피해 보상을 요구하고 ‘한국 측 사고 책임자’의 엄벌을 요구하는 적반하장격인 일도 벌어졌다. 작년 12월에는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는 듯한 발언도 있었다. 중국 외교부 장위 대변인의 경직된 얼굴과 앙칼진 목소리의 논평을 듣는 것이 일상사가 되고 있진 않은가.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겠지만 이웃에는 불편함과 적대감을 심어 준다. 중국이 패권국이 되는 것은 필연이지만, 촌스럽고 막가파 식이 아닌 좋은 패권국가로 가야 하지 않겠나.

북핵 두둔으로 핵경쟁 부를건가

북한 관련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중국의 최근 외교 행태는 아직 글로벌 리더로서의 자질 부족을 보인다. 중국이 명심해야 할 일은 북한 핵에 대한 미지근한 태도는 자연스레 한국과 일본의 자체 핵무장론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상황 전개다. 중국의 상당 부분을 커버하는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 1000km 확장 논의나 전술핵 재배치 시사 등은 당연한 후폭풍이다. 중국은 냉전시대의 핵무기에 의한 공멸 공포에 기인한 세력균형(balance of terror)을 원하는가. 다행히 핵무기 경쟁은 평화적으로 끝났지만 한순간에 지구가 잿더미가 될 위험성이 상존했다.

중국 내에서도 도광양회(韜光養晦·힘을 드러내지 않고 기다린다는 대외정책 기조)를 너무 일찍 버렸다는 자성이 나온다. 중국이 혼란스럽거나 불건강해질수록 한국은 힘들어진다. 그 대신 중국이 건강하고 세련된 강대국으로 커 나가야 한국도 편해진다. 중국에 진정한 대국의 길을 택해야 하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온다. 그 첫 리트머스 테스트는 북한 문제가 될 것이다.

강규형 객원논설위원·명지대 기록정보과학대학원 교수 gkahng@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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