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씨는 6일 ‘5년의 악몽’을 털어놓으며 “아직 신고할 용기를 못 내는 분들께 힘이 됐으면 하지만 신고한다고 끝이 아니라서…”라며 말을 흐렸다. “요즘 인권 때문에 교도소에서도 아픈 사람 다 고쳐준다면서요. 그 인간 고작 몇 년 살고 건강해져서 나오면 어떡하죠.” 고액 연봉의 공기업에 다니는 박 씨가 여경으로 진로를 튼 건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박 씨의 공포는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다. 최근 보복범죄 현황을 보면 2006년 70건이던 게 2009년 129건으로 3년 새 84% 늘었다. 피살된 사례도 4건이나 된다. 어렵게 신고를 해도 보복의 공포가 계속되는 것이다.
“신고하면 너는 물론이고 가족들도 죽인다”고 협박해 박 씨를 수백 차례 성폭행한 이경수(가명·55). 그는 구속 여부를 결정하는 판사 앞에서 “우린 사실상 주말부부였다. 부부보다 더 깊은 정을 나눴다”고 강변했지만 결국 구속됐다. 경찰조사 땐 피해자와 통화를 하게 해달라며 진술까지 거부하다 결국 허락을 얻어냈다. 그는 통화에서 “은경아, 몸이 너무 아프다. 고소 취하해 줄 거지?”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하지만 전화를 끊자마자 “내가 (징역) 살면 얼마나 살 것 같아. 나가기만 해봐”라며 안색을 바꿨다고 경찰은 전했다.
박 씨는 그에게서 해방될 수 있을까? 보복 우려가 있을 경우 가해자에 대한 보호관찰이나 접근금지 규정이 있긴 하지만 범위가 가정폭력 등에 제한돼 있다. 피해자 신변보호도 폐쇄회로(CC)TV 설치나 주변 순찰 등에 그치고 있어 효과는 크지 않다. 반면 미국은 가해자가 추적할 수 없도록 피해자의 거주를 옮겨 주고 신원도 세탁해 준다. 또 성폭력 등 강력범들은 출소 후에도 음주 등 범행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을 통제하고 강제적 치료 명령을 내린다.
기사를 보고 연락해온 부산의 한 경찰관은 “20년 넘게 흉악범들을 겪어 봤는데 피해 여성은 아주 위험한 상태”라며 “지금처럼 설렁설렁 순찰 도는 정도로는 절대 보복을 막을 수 없다”고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학창시절 별명이 ‘스마일 걸’이었던 박 씨는 “지옥의 5년을 보내며 마음이 돌이 됐다”고 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신고할 용기를 내는 일이었다면 그녀에게 웃음을 돌려주는 건 이제 사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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